↑ `악녀` 정병길 감독. 제공|NEW |
정병길 감독(38)이 신작 ‘악녀’로 본격적인 날갯짓을 시작한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은 데 이어 할리우드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그야말로 탄탄대로다.
국내 개봉 전부터 이미 해외에서 호평과 찬사를 이끌어낸 정 감독은 이 같은 관심에 대해 “꿈을 꾸는 듯 얼떨떨하고 신기할 따름”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악녀’는 그 시작부터 거침없는 액션으로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 마치 게임 속 가상현실에 놓인 듯, 헤드캠을 두르고 살벌한 적진의 복도 한가운데를 걷는 것도 같은 독특한 오프닝.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단 1초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 휘몰아친다. 공포스럽고도 잔인한 몸짓이 만들어내는 묘한 카타르시스, 바로 ‘악녀’의 여주인공 숙희(김옥빈 분)의 등장이다.
정 감독은 “여배우가 만들어내는 액션의 한계점을 보완하면서도 장점과 신선한 묘미들은 극대화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특히 디테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면서 “많은 분들이 오프닝에 대한 찬사를 해주셨는데 사실 탄생 비화를 따져보면 슬픈 과거가 녹아 있다. 역시 세상엔 나쁜 일만 생기란 법은 없다. 비온 뒤에 땅은 반드시 굳더라”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3년 전에 광고성 단편 영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열정적으로 준비를 해갔음에도 불구, 투자의 문제로 결국 무산돼버렸어요. 굉장히 하고 싶은 도전이었기에 속으로는 많이 아쉽고 아깝고 속이 상했었는데 이번 영화에 딱 맞아 떨어졌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현장감은 뛰어나고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강약 조절이 탁월한…세세하게 신경 쓴 만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너무나 다행이에요.”
정 감독은 “사실 처음 여자 액션 원톱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땐 주변에서 기대보다는 우려의 반응이 컸다”면서 “‘한국에서 그런 게 되겠냐’부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나’ ‘그런 배우가 있을까’ 등의 우려들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예전 홍콩 영화나 할리우드의 경우 여자 액션 영화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좋은 여배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영화가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워낙 액션을 좋아하는데다 여배우가 원톱인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애착을 가지고 임했다”고 말했다.
“25살 때 영화를 처음 시작했는데 어떤 술자리에서 영화감독 혹은 지망생 형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떠올라요. 그때 꿈이 뭐냐는 질문에 제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는데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거든요. ‘한국에서 데뷔나 제대로 하고 해외까지 넘보라’며 놀려대고 무시했는데…‘악녀’를 통해 칸에도 다녀오고 할리우드에서 러브콜도 받으니 정말 꿈만 같아요. ‘악녀’는 제 꿈을 이루는데 엄청난 발판이 돼 준 작품이에요.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해야할 일들이 많지만 그 미래가 어떤 것이든 ‘악녀’는 제게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인 논의는 오고 가지 않았지만 이미 할리우드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그다. 몇 차례 새로운 작업과 관련,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본격적인 미팅은 이제부터란다. 장르는 정 감독의 주특기인 액션, 그 외 세부 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
정 감독은 “막연했던 꿈이 점차 현실이 돼가는 이 시점에서 더 잘하고 싶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겠다는 책임감도 크다”면서 “막연히 카메라 하나 들고 혼자 영화 찍던 시간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기회를 얻게 돼 꿈만 같다”며 웃었다.
이어 “상황이 허락된다면, 할리우드와의 작업일지라도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 로케이션으로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면서 “한국을 배경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멋진 액션물을 완성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영화 ‘악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가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강렬한 여전사 액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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