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익 감독. 사진|유용석 기자 |
‘박열’이 스크린에서 튀어나왔다. 인터뷰를 위해 도착한 현장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비스듬히 걸쳐 앉은 박열은 배우 이제훈이 아닌 감독 이준익이었다.
‘박열’은 1923년 도쿄를 배경으로 관동대지진 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은 ‘황산벌’, ‘왕의 남자’, ‘평양성’, ‘사도’, 그리고 지난해 개봉작 ‘동주’에 이어 또다시 주 전공인 시대극에 도전, 자기 복제를 과감히 거부하며 전혀 다른 결로 승부수를 띄운다.
첫 만남이었지만 반말로 친근함을 더한 그는 인터뷰 내내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동주’의 호평에 힘입어 한층 화려해진 ‘박열’에 대해 그는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동주’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파격적이고 대중적이며 화려하다”고 하니, “‘박열’은 단순히 항일운동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단 그 시대 속 플라토닉 사랑을 그린 러브스토리다. 똑같은 걸 뭐하러 또 하느냐”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박열’에 대한 궁금증이 컸고, 이것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동주’의 성공이 큰 발판이 됐다. 모두가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인데, 영화를 잘못 만들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다행스럽게도 결과가 좋아 ‘박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를 통해 역사에 대한 보다 열린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
↑ 이준익 감독은 `박열`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감이 넘쳤다. 사진|유용석 기자 |
제작보고회 당시 ‘박열’을 소개하며 “박열을 ‘제2의 송몽규’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는 이 감독은 “결국 ‘박열’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단순히 ‘박열’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려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일본 식민지 시대를 보는 어떤 고정된 틀과 시각을 깨고자 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블랙코미디와 상상력을 동원해 기존 시대극들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을 하며 공을 들였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불령선인’이라 칭하며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펼치던 조선의 청년 박열. ‘박열’은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한 후 대역 사건으로 기소돼 일본에서는 조선인 최초의 대역 죄인으로, 조선에서는 영웅으로 불린 인물이다.
한층 화려해진 볼거리, 하나같이 개성 있고 센 캐릭터들, 강렬한 대사의 향연 등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에 대중성은 높아졌지만, ‘동주’의 묵직한 울림을 기대하는 이들에겐 다소 아쉬운 지점이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사전 시사 결과,) 그런 반응은 20% 정도?”라고 여유를 보이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박장대소하거나 눈물을 훔치더라. 벌써 4번이나 관람했다는 관객들도 있더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 감독은 “처음엔 박열이, 그 이후엔 그에 못지않은 존재감을 내뿜는 후미코가, 그 다음엔 또 다른 인물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입체적인 관전 포인트가 다분하다. 기존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 지점을 찾지 못한다면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끝으로 그는 “‘박열’은 반일 영화가 결코 아니다. 앞으로 도래할 아시아 연대에 대한 역사관 정립을 위한 작품”이라며 “단지 대결과 반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 공동체로 보아야 한다. 그런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를 담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28일 개봉, 극장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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