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주는 '란제리 소녀시대'를 통해 풋풋한 첫사랑을 전했다. 제공| AOF엔터테인먼트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배똥무이 아직까지 내 기다린기가?" 소년은 소녀의 타박에도 방긋 웃었다. 소녀는 소년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쏘아붙였지만, 소년은 그마저도 좋았다. 배우 서영주(19)는 KBS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에서 이정희(보나 분)를 짝사랑하는 배동문 역을 맡았다. 이정희가 거친 대구 사투리로 불렀던 배동문은 '배똥문'이 됐다. "1970년대로 가서 진짜 사랑을 한 듯해요. '란제리 소녀시대'는 한마디로 행복이었죠." 서영주는 고등학생 역을 위해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소감을 말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란제리 소녀시대'는 197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여고생 이정희의 사랑과 성장을 담음 작품이다. 이정희는 여학생들이 선망하는 손진(여회현 분)에게 첫눈에 반했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아픔을 매번 감싸준 배동문에게 마음을 열었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배동문이 이정희의 이마에 뽀뽀하면서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신을 촬영하기 전에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찍을 때도 난리 쳤죠. 제 연기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배경은 잘 드러난 것 같아요. 보나 누나와의 꽁냥꽁냥함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 만족스러워요."
'란제리 소녀시대'는 기대 속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신인급 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섰고, 비교적 짧은 8부작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시청자의 반응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악평은 호평으로 바뀌었다.
"배우들끼리 '무게 잡지 말고, 이정희라는 소녀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그 시대의 풋풋한 사랑을 전하자'고 했죠. 촬영 전 부산 사투리를 준비했다가 경상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너무 어려웠죠. 통금 교련 등은 낯선 단어였고요."
'란제리 소녀시대'에는 서로 다른 남자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정희만을 바라보는 배동문과 모든 걸 갖춘 손진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서영주는 손진 역할에도 관심 있었다. "손진을 하고 싶긴 했는데, 피부가 하얗고 멋이 뿜어져 나와야 하는 인물 같았죠. 반면 배동문은 완전히 당시 대구 사람이었어요. 결국 저와 잘 맞는 배동문을 연기하게 돼 좋았어요."
손진은 서영주와 '솔로몬의 위증'에 함께 출연했던 여회현(23)의 캐릭터가 됐다. 서영주, 여회현은 '솔로몬의 위증'에서 형제로 나왔으나 호흡을 맞출 기회는 없었다. 두 사람은 이번 작품을 통해 카메라 앵글에 같이 설 수 있었다. "(여)회현 형과는 '솔로몬의 위증'에서 얼굴 한 번 마주친 정도였는데, 그때에도 '정말 잘생겼다'고 느꼈죠(웃음)." '란제리 소녀시대'를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은 작품이 끝난 뒤에도 같이 게임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친한 사이가 됐다.
↑ 서영주는 배우로서 2개의 '최연소' 타이틀을 갖고 있다. 제공| AOF엔터테인먼트 |
짧은 준비 기간 탓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90년대생 또래 배우들이 모인 촬영장은 활기 넘쳤다. 연기 경력이 길지 않았던 이들은 매 순간 배우는 자세로 카메라 앞에 섰다. 열정이 한데 모인 덕분에 '란제리 소녀시대'는 우려를 씻고 청춘의 사랑을 담은 수채화 같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서영주는 주인공 이정희를 연기한 보나(본명 김지연·22)를 향한 감사의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보나 누나가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정희가 주인공이라 거의 모든 장면 촬영에 참여해야 했는데도 대구 출신인 보나 누나가 제 사투리 연기를 도와줬죠. 촬영 시간 외에도 계속 연습을 하고, 지문 안에 다른 행동들을 넣어보기도 했어요."
1970년대 배경도 연기하는 데 쉽지 않았다. 서영주는 "'그저 불편했겠지'라는 편견이 있었다. 가족이나 감독님에게 물어보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배동문이 이정희에게 반하는 계기가 된 미팅 장면도 서영주에게는 낯설었다. "당시에는 남녀 학생이 따로 만나면 체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소지품을 꺼내 미팅을 했다는 것도 몰랐어요(웃음)."
배동문은 상처 받은 이정희와 함께 길바닥에서 울며 언제나 옆을 지켰다. 그는 이정희가 손진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서울로 떠난 손진의 근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손진을 향한 질투는 있었지만, 그보단 이정희가 아파할까봐 항상 마음 졸였다. "배동문은 순진하기 때문에 용기 있고 바보 같았어요.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라고 단순한 거죠. 이정희 하나만 좋아해서 같이 눈물 흘린 게 아닐까요. 손진은 요즘 시대 사람 같지만, 배동문은 손진과 달랐죠."
아역 때부터 여러 작품에 출연한 서영주는 2개의 '최연소' 타이틀을 갖고 있다. 지난 2012년 영화 '범죄소년'의 장지구 역으로 국제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연극 '에쿠우스'에서 최연소로 알런 역을 맡은 것이다.
"엄청 감사했지만, 부담스럽기도 했죠.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대한 걱정은 점차 사라졌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었으니까요. '나이가 어렸을 때 한 것뿐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천천히 배워가고 있어요."
서영주는 '란제리 소녀시대'를 통해 사랑에도 눈떴다. 배동문 옆에 항상 좋은 친구들이 따라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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