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르곤’을 보고 눈물이 났다. 기자 초년병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캡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에게 쓴소리도 하고 잠도 못 자게 하며 힘들게 하는 악독함(?)은 있었으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막무가내 막내의 취재 틀을 잡아주고 방향을 이끌었다. 인간적이었다. ’아르곤’ 팀장 김백진의 모습 그대로였다. 드라마 ’아르곤’ 속 김주혁의 모습이 10년 정도 된 과거의 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르곤’을 시청하며 출연진 한 명에게 "김주혁 배우를 보고 과거 우리 캡이 생각날 정도였다. 현실적이라 울컥했다"며 몰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연기를 했기에 너무 잘 봤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현직 기자에게 칭찬을 듣다니 기분이 좋다"는 답이 왔다.
기분 좋게 그 드라마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데 비보가 날아들었다. 지난달 30일 김주혁이 탄 차량의 전복 사고 뉴스. 오보가 종종 있으니 사실이 아니라는 정정 기사나 공식 입장이 나오길 바랐으나, 사망과 관련한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사실 김주혁 배우와 친분은 그리 깊지 않다. 연기로만,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접했고 인터뷰를 통해 만나긴 했으나 그 후 직접 관계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사망 소식에 허망하고 허탈했다. 과거 김주혁을 대면했을 때 느낌은 상대를 유쾌하게 하는 인터뷰이는 아니었으나 진심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1박2일’ 구탱이형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기 전의 만남이었다. 그는 "배우 생활하면서 친한 연예인이 없어요. 제 성격이 약간 그래서…"라며 스스로 내성적이고 숫기 없다는 진단을 내렸었다.
하지만 전해 듣기로 ’1박2일’ 이후 그는 친근해졌고 말도 많아졌다. 또 다양한 연기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였고, 불과 사고 3일 전 ’더 서울 어워즈’에서 영화 ’공조’로 생애 첫 남우조연상도 따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더는 다시 그를 대면할 기회는 없다. ’아르곤’은 기자를 소재로 한 작품 중 가장 만족하며 본 작품이었기에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었으나 담당이 아니었기에 마지막 그의 모습을 눈에, 글에 담지 못했다. 못내 안타깝다.
’아르곤’ 출연 배우는 내 칭찬의 말을 듣고 "선배님에게 전해줄게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아니에요. 김주혁 배우님 저 몰라요"라고 답하고 말았다. 물론 그의 연기를 칭찬하는 사람이 이미 많고, 그 역시 알 텐데 ’그의 팬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알려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고인의 빈소 취재를 하며, 소속사가 일반인 조문을 허용했을 때 만난 조문객은 모두 "친분은 없는데 아프고 허망하다. 가까운 사람을 보낸듯하다"고 했다. 지인이 아닌데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도 꽤 많았다. 오래 연기를 해오고, 프로그램에서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이런 감정이 들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허망하고 허탈한 기분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모두에게서 같은 마음을 느꼈다.
지난 2일 발인식이 끝나고 운구 행렬이 빠져나갔을 때, 오랜 기간 함께한 나무엑터스 여직원 하나가 오열했다. 장례 기간 내내 취재진에게 담담하게 상황과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강인하게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운구차와 버스 2대가 고인의 장지로 향하자, 이 직원은 참고 참았던 감정이 복받친 듯 꺼이꺼이 소리 내 흐느꼈다. 그 안타까운 마
그의 어깨를 다독이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 직원, 유족, 연인 이유영, 소속사 식구들, 조문객, 빈소를 찾지는 못했으나 김주혁을 애도한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구탱이형, 김주혁 배우님 좋은 곳에서 영면하세요."
jeigu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