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장항준 감독이 정말이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다.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의 묘미는 단연 겹겹이 쌓여진 페이크와 반전들을 거쳐 만나는 ‘진실’, 그것을 보다 새롭고 충격적이며 괴기스럽고도 뭉클하게, 여기에 ‘엣지’까지 갖추고자 부단히 애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너무 이를 악문 나머지 그 이가 부러져버린 느낌이랄까.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을 통해 독창적인 연출력을 자랑해온 장항준 감독이 ‘기억의 밤’을 통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무려 9년간 품어왔던 장 감독의 갈증과 열망은 작품 곳곳에서 묻어난다. 다만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는 게 문제다.
영화는 납치된 후 기억을 잃고 변해버린 형과 그런 형의 흔적을 쫓다 자신의 기억조차 의심하게 되는 동생의 엇갈린 기억 속 살인사건의 진실을 담은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 ‘만약 내가 알던 형이 그 형이 아니라면?’ ‘실종 그 후 완전 딴 사람이 된 낯선 가족이 있다면?’이라는 섬뜩하고도 참신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골자가 되는 형제의 관계, 두 사람을 둘러싼 ‘근원적 진실’과 소름끼치면서도 애통한 정서는 충분히 매력 적이다. 다만 이것의 극대화를 위해 너무나 많은 장치와 설정, 이야기를 입혔다. 끝없는 포장 때문에 ‘짠!’하고 서프라이즈를 선보일 때쯤, 관객들은 이미 피로함에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다. 탁월한 뼈대가 비대한 살집에 묻히다 못해 부러져버린 상황인 셈이다.
시간을 잃어버린 ‘진석’(강하늘)과 청춘을 잃어버린 ‘유석’의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이야기에 보다 집중했다면, 이를 둘러싼 각종 플롯과 장치들에 대한 욕심을 과감히 덜어냈다면, 보다 담백하게 장르적 특성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그날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전형적인 신파적 배경이나, 반전극에 참여한 인물들의 무개연성, 사건 전개의 비현실성과 대비 효과를 노린 올드한 장치 등 과잉 설정이 많아도 너무 많다. ‘공존의 시간’, 즉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적 운명’에 대한 감독의 시선과 메시지는 이로 인해 매몰되고야 만다. 사건의 반전이 본격화되면서 극적 긴장감과 ‘진실’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야 하는데 오히려 베일이 벗겨지면 벗겨질수록 피로해지고 흥미는 떨어진다.
어떤 역할이든 똑똑하게 변주에 자기 것으로 만들기에 능한 강하늘은 이번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야누스의 면모를 백분 발휘한 김무열 역시 넓은 스펙트럼에 입체적인 캐릭터를 공감 있게 그려냈다. 아쉬운 건 그저 ‘너무 많을 걸 담고 싶었던’ 감독의 ‘과욕’뿐이다. 11월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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