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뭉친 솔리드 정재윤, 김조한, 이준(왼쪽부터). 제공|솔리드 |
3인조 그룹 솔리드(Solid)가 돌아왔다. 한국 대중가요 르네상스 시기로 불렸던 90년대를 풍미한 이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라면 시쳇말로 ‘옛날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을 법도 한데, 놀랍게도 솔리드의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첨단’을 달리고 있다.
1993년 1집 ‘기브 미 어 챈스(Give Me A Chance)’로 데뷔한 솔리드는 당시 한국에서 생소했던 R&B, 뉴잭스윙, 힙합에 기반을 둔 음악을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밤의 끝을 잡고’, ‘나만의 친구’, ‘천생연분’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고 승승장구했지만 1997년 4집 ‘솔리데이트(Solidate)’를 끝으로 돌연 활동을 중단, 이후 프로듀서(정재윤), 솔로가수(김조한), 사업가(이준)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추억의 그룹으로 남는가 싶던 솔리드가 지난달 새 미니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를 발매하고 무려 21년 만에 컴백했다. 1년 가까이 준비한 이번 앨범 역시 수록곡 전 곡 솔리드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리얼’ 솔리드표 앨범이다.
이렇게 해낼 수 있던 재결합까지, 어쩌다 21년이나 걸렸던 걸까.
“인생이 마치 ‘인터스텔라’ 같아요. 각자 살다 보니 세월이 엄청나게 빨리 지나갔네요. 저는 프로듀서로 일하다 보니 거기 몰입하며 풀 타임으로 일하게 됐고, 이준 역시 사업 하면서 각각 바쁘게 지냈어요. 서로 음악을 같이 해야겠다는 얘기는 오고 가긴 했지만, 이번에는 ‘더 기다리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정재윤)
1997년 마지막 콘서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각자의 삶에 몰두하던 세 사람이 솔리드로 다시 뭉친 일은 팬들에게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처럼 느껴질 테지만, 실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우리 셋 다 절친인 친구가 있었어요. 친구들 중 유일한 싱글이었는데, 그 친구가 장가를 가게 돼 셋이서 들러리를 서게 됐죠. 같은 양복을 입고 들러리로 나서니 친구들이 ‘솔리드다’ 라며 웃더군요. (김)조한이가 솔로로 축하곡을 불러야 했는데, 우리도 같이 무대에 끌려 올라가서 ‘천생연분’을 불렀어요. 당시 다들 ‘솔리드! 솔리드!’ 하며 분위기가 뜨거웠는데, 그 날 이후 다시 솔리드를 생각하게 됐어요.”(정재윤)
↑ 21년만에 컴백한 솔리드는 세월이 대단히 빠르게 흘렀다고 했다. 제공|솔리드 |
“20년 전, 솔리드로 마지막 방송 하고 떠났는데 당시 너무 바빴어요. 음반도 직접 다 만드는데 활동도 전국을 누비며 해야 했죠. 음반 세 개를 그렇게 하고 나니 지치더라고요. 아이디어도 고갈됐고요. 리프레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죠.”(김조한)
그렇게 재충전기에 들어간 1997년 이후, 이준은 미국으로 건너가 부모님과의 약속인 학업에 몰두했다. 정재윤은 미처 진행 못 했던 음악 프로젝트에, 김조한은 솔로 보컬리스트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1년이 가고, 5년이 가고, 10년이 흘렀다.
“제 노래 중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라는 곡이 있어요. 각자의 생활로 시기가 안 맞은 건 사실이지만 너무 늦은 거죠. 하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준 씨도 사업 하고 있어도 스케줄 맞춰 나올 수 있고, (정)재윤씨도 본인 프로젝트 하면서도 할 수 있고, 저도 제 음악 하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3~5년 전만 해도 못 할 수도 있었어요. 많이 늦어 죄송한 마음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퍼펙트한 시기라고 생각해요.”(김조한)
팀 내 래퍼로 실력뿐 아니라 훈훈한 외모로 뭇 여심을 사로잡았던 이준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세월에도 여전한 모습의 솔리드 공식 ‘비주얼’ 담당이다. 하지만 정재윤, 김조한과 달리 지난 시간 음악 아닌 사업에 전념해 왔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 개발 사업가로 거듭난 상황. 솔리드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음악 활동을 해오지 않았던 터라 그의 어린 자녀들은 아빠가 가수인 것조차 모르고 있단다.
“아이들은 아빠가 가수인 걸 최근에야 학교 친구들에게 들어 알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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