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가요의 상징적 존재인 김민기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특별하고도 가슴 벅찬 대화를 나눴다.
손석희 앵커는 “그간 많은 분을 이 자리에 모셨지만, 오늘은 우리 대중음악사의 큰 강줄기에서 발원지에 있는 분을 만나 뵙는 것 같다”며 “어쩌면 오늘 이후로 문화초대석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김민기는 이날 “그런데 왜 방송 인터뷰에는 잘 응하지 않냐?”고 물음에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배우들을 앞 것들이라고 하고, 스태프들을 뒷 것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뒷 것의 대표를 맡고 있다 보니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앨범만 냈었다”며 “가수할 생각은 없었다. 노래만 만들 생각이었다”며 인터뷰를 거의 안하는 진짜 이유를 우회적으로 전했다.
인터뷰 중 손 앵커가 “오늘 처음으로 ‘아침이슬’ 탄생 과정을 말한다고 하더라”고 운을 띄우자, 김민기는 “이 얘기는 내가 어디 가서 잘 한 적이 없다”며 긴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내가 미술대학에 입학을 하고 정릉, 수유리로 이사를 갔다. 그 때 반지하 창고를 처음으로 내 개인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됐다. 그 곳에서 난 그림 작업을 하다 막히면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 날도 한밤 중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가사가 막혀서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시련’이라는 가사를 ‘나의 시련’으로 바꾸어봤다. ‘그의 시련’이라고 하면 예수나 부처 등을 의미하겠지만 ‘나의 시련’으로 바꾸니 노래가 금방 풀리더라. 그렇게 만들어 진 ‘나의 시련’이라는 부분이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다가갔고, 그래서 많이 불리게 된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침이슬’은 한국사회의 주요 변곡점마다 대중들에 의해 선택되고 불려온 노래다. 그래서 겪은 부담감도 토로했다. “이제는 거의 50년 전 이야기다. 나는 한참을 떠나 있었는데, 그러다 1987년에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걸 봤다. 그 전까지는 부른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물론 그 때 나도 군중 속 한 사람이었다. 노래를 듣는 순간 고개를 들 수가 없더라. 그 모든 사람들이 절절하게 부르고 있었으니까… 그때 느꼈다. 이건 내가 아니라 저 사람들의 노래라고. 그리고 내 부담은 사라졌다”고 가슴 뭉클한 고백으로 눈길을 모았다.
세월호 관련 음악 제작을 거절한 이유도 밝혔다. 김민기는 “이전에 만들어온 노래들이 어떤 의도, 계획 하에 만들어본 적이 없다”며 “어떤 의도로 해달라고 했을 때, 물론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내 작업 문법하고 안 맞더라”라고 답했다. 이어 “과거 써놓은 노래가 있었는데, 그때 제 심경과 다를 바가 없어 쓰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민기는 세월호 영화 주제가를 요청받았으나 이를 거절, 고등학교 때 만든 노래 ‘친구’를 대신 전한 바 있다.
김민기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다. 손 앵커는 “10년 전에 ‘지하철 1호선’을 그만둘 때 많이 의아해했다. 공연이 잘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고 질문했다. 김민기는 “아동 청소년 극이 더 급한 길이라고 생각돼서 거기에 매달리게 됐다”며 “극단을 만들고 올린 작품이 열다섯 편이 되더라. 이제는 정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첫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을 공연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IMF를 배경으로 한 ‘지하철 1호선’에 대해 “그 시절의 것은 그 시절의 기록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배경이 달라진다고 해도
IMF를 배경으로 한 ‘지하철 1호선’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큰 울림과 감동을 줬다. 김민기는 “서민들의 생활은 늘 고달프다”라는 말로 10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애둘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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