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그리고 삶은, 복잡한 듯 단순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수시로 무너지고, 자아는 굳건한 듯 쉴 새 없이 흔들린다. 나약하고 고독하지만 얽히고설켜 힘차게 살아 숨쉬기도 한다. 이중, 삼중, 아니 다중인 듯 결국은 똑같고, 의미 없는 듯 모든 게 의미 그 자체이기도 하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볼 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22번째 작품 ‘풀잎들’이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 첫 공개된 가운데 김민희와의 사생활 문제와는 별개로 이번에도 그의 세계로의 초대는 쉽게 거부할 수 없을 듯하다. 형언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어떤 변화가 신선하고도 반갑다. 그이기에 가능한, 타고난 재량과 특유의 솔직함, 새로운 변주가 모호한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하모니를 이룬다.
커피집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으로 커피집이 있고 사람들이 그 커피집 안 여기저기에 앉아 얘기들을 하고 있다. 밖에는 건너편 슈퍼 아줌마가 심어 놓은 몇 가지 종류의 야채의 새싹들이 고무대야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로 섞이고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감독은 절대로 풀 수 없는, 고도로 매력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를 단 1시간 만에 쉽고도 간결하게 그려낸다. 삶의 순환을 카페 앞 화분에서 자라나는 풀잎들의 성장에 빗대 자연스러운 섭리의 무엇으로 소박하게 풀어낸다. 모든 장면의 파편은 결국 하나로 귀결 되고 이 과정은 지극히 평범하다. 소소한 감동과 웃음이 틈틈이 새어 나온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먼저 이해하고 반응하며 소통한다. 가장 어려운 과제를 얄미울 정도로 쉽고도 편안하게, 그 만의 세계 안에 적절하게 녹여냈다.
한편, ‘풀잎들’은 앞서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의 문을 여는 첫 작품으
국내에서는 ‘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첫 공개됐다. 오는 25일 공식 개봉한다.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6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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