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배우 고(故) 신성일이 가족과 많은 영화인들의 배웅 속에 마지막 길을 떠났다. 향년 81세. 고인의 아내이자 배우인 엄앵란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신성일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독고영재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묵념, 고인에 대한 약력 보고, 추모영상 상연, 조사, 추도사, 분향 및 헌화, 유가족 대표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엄앵란은 수척해진 얼굴로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영결식장에 들어왔다. 이어 고인의 영정 사진이 들어왔고, 운구가 진행됐다. 추모영상 상연에서는 ‘맨발의 청춘’, ‘초우’, ‘안개’, ‘내시’, ‘별들의 고향’ 등 고인의 대표작을 보며 고인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은 “선배님은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보셨으니 이제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셔도 될 것 같다. 시련도 아픔도 있으셨겠지만, 선배님과 같이 축복과 은총을 누리고 간 인생이 얼마나 있으셨겠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들은 행복했고,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한국 영화의 전설이었고 신화였다. 하늘의 별이 되셨으니, 사랑하는 지상의 가족들 지켜주시고, 우리나라 영화의 앞날을 지켜주시기 바란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남긴 말을 조금 바꿔서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라고 애도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고인은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을 히트시키며 한 시대를 풍미한 은막의 스타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이후 1978년 박경원 전 장관의 특별보좌역으로 발탁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고,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토록 화려한 삶을 살았던 신성일은 지난 2017년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이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며 회복에 전념했지만, 지난 4일 오전 2시 30분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끝내 눈을 감았다. 고인의 아내에게 남긴 유언은 (차녀 수화 씨에 따르면)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했다”였다고.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이자 한국 영화계 사상 가장 화려했던 신성일의 타계에 영화계 동료는 물론 선후배 스타들과 정계 인사들까지 빈소를 찾거나 조화를 보내는 등 고인을 추억하며 애도했다. 빈소를 찾은 이순재는 “고인은 한국영화가 획기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여한 사람”이라며 “신성일에 대한 많은 자
한편 고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가운데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고, 배우 강수연, 거룡, 송강호, 이덕화, 장미희, 최민식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장지는 고인이 노년에 머물던 경북 영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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