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3일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거리 사진=KBS |
17일 오후 방송되는 KBS2 ‘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3일’)에서는 맛도 세 겹, 감동도 세 겹인 ‘청주 삼겹살거리’에서의 3일이 전파를 탄다.
과거 청주 최고의 상권으로 50년 이상 전성기를 구가했던 청주 서문시장.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흐르는 시간과, 세월의 변화를 붙잡을 순 없었다. 청주경찰서에 이어 버스터미널이 외곽으로 이전하고, 대형마트마저 들어서며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 한 때 130여 곳에 이르던 점포는 반 토막이 났고, 문을 여는 점포보다 문을 닫은 점포가 더 많을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그저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고심하던 청주시는 어느 시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삼겹살 거리’를 조성하기로 했다. ‘치킨에 맥주’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전 국민의 소통 언어이며, ‘세종실록지리리’ 등 문헌에도 청주 돼지고기와 관련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청주와 삼겹살의 인연이 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 유일의 삼겹살 특화거리는 시작되었다.
이후, 거리엔 다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2년을 시작으로 벌써 햇수로 8년을 거듭하며, 320m 남짓의 작은 시장 골목엔 삼겹살을 파는 점포가 15개로 늘었다. 청주 삼겹살과 삼겹살거리를 알리기 위해 매년 3월 3일, 3‧3데이 삼겹살축제도 열린다. 삼겹살 무료시식회, 플리마켓, 경품 추첨 등 다양한 행사가 축제의 흥을 돋운다. 무료시식행사에는 삼겹살거리 상인들이 모두 나와 직접 삼겹살을 굽고 잘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거리에 대한 애정과 나의 작은 노력이 모여 만들어낼 ‘기적의 힘’을 믿는 것이다. 2018년 한 해에만 48만 개의 가게가 새로 생기고, 42만 개의 가게가 사라졌다. 창업시장의 진입장벽은 낮지만, 그 벽을 길게 쌓아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청주 삼겹살거리와 삼겹살축제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험난한 자영업 시장에서 자신만의 전략과 특색으로 가게를 지켜나간 상인들의 노하우가 한 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한 겹, 정성이 한 겹, 희망이 한 겹. 이 거리를 만든 건 누군가의 세월과 누군가의 정성, 삼겹살에 희망을 건 누군가의 절실함이었다.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새로이 단장된 삼겹살거리, 현대식 외관을 지니고 있지만 이 골목엔 시장과 가게에 인생을 바친 상인들이 많다. 알록달록 화려한 간판을 지닌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푸근하고 중후한 인상의 지긋한 상인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30년, 40년… 감히 짐작조차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을 시장에서 보낸 상인들은 변화한 삼겹살거리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주로 저녁 메뉴로 사랑 받는 음식이지만 부지런히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상인들은 오전 일찍 나와 가게를 열고, 장사할 채비를 시작한다. 더군다나 축제가 시작되며 평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틀림없는 상황. 냉장고 가득 고기를 채워 넣고, 수 백 명은 거뜬히 먹을 양의 반찬을 만든다. 고단하고 벅찰 법도 한데, 상인들의 얼굴엔 웃음이 한 가득이다. 젊음과 세월을 바쳐 일궈온 가게와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상황이 그저 행복하기 때문이다. 청주 삼겹살거리엔 성실과 노력으로 거리를 살려낸, 누군가의 세월이 있다.
햇수로만 16년째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돈 사장님. 그가 운영하는 가게는 서문시장 삼겹살거리 내의 삼겹살집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 게다가 20년 간 정육점을 운영하다, 삼겹살집을 차렸으니 벌써 서문시장 안에서만 36년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정육점을 운영하던 경험을 살려, 그는 매일 가게에서 쓰는 고기를 직접 손질한다. 축제 이튿날, 주말을 맞아 손님들이 몰릴 것을 대비해 이른 시간부터 칼을 갈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그는 닳고 닳아 작아진 칼을 갈며 그간 자신의 나날들을 돌아본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의 칼들. 크고 뾰족하던 칼을 무뎌지게 만든 시간의 흐름처럼, 그의 젊음도 이곳 시장에서 함께 흘러갔다.
내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기분 좋게 돌아가는 일.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 이상 뿌듯한 일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지갑과 마음을 여는 일이란 게, 결코 녹록치만은 않아 작은 부분 하나도 사려 깊게 챙기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삼겹살’을 파는 식당 15개가 모여 있으니, 자신들만의 특색을 가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이곳 상인들은 부지런히 발품, 손품을 팔아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비장의 무기를 마련한다. 삼겹살을 이용한 짜글이 찌개를 맛있게 끓여 내놓기도 하고, 삼겹살집 반찬이라곤 믿을 수 없는 매콤달콤한 양념게장을 내놓기도 한다. 그 뿐이랴, 가게 문을 열고 장사 준비만 하기에도 부족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제철을 맞은 봄나물을 캐기 위해 밭에 가기도 한다. 보통 마음, 작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 이 거리를 일군 건, 내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 대한 감사와 그에 보답하기 위한 정성이다.
서문시장 삼겹살거리에서 부지런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하나 있다. 한식에 삼겹살을 더해, 다양한 반찬을 자랑하는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김영일 사장님. 그의 가게에선 초석잠으로 담근 장아찌, 방풍나물 무침 등 건강을 생각한 몸에 좋은 반찬들이 잔뜩 나온다. 가격보다도 손님들의 입에 맞고, 건강에 좋은 재료를 쓰는 게 우선이라는 게 그의 영업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정성이 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젊은 시절 갖게 된 장애로 오른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치 않은 몸으로 정성을 다하기 위해 그는 남들 두 배로 노력하고, 움직인다. 불편한 한 팔에 큰 쟁반을 끼고 십 수년째 점심 배달도 다닌다.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남들만큼도 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근면과 성실로 일궈낸 오늘의 삶이 고맙기만 하다.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정성’을 차려낸다.
북적이는 거리, 시끌벅적한 축제. 쏟아지는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꿈을 꾼다. 축제 기간 동안 북적이는 거리의 풍경에, 상인들은 불황 속에서도 가게를 지켜나갈 용기를 얻는다. 자영업자의 70%가 폐업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험난한 창업시장, 이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와 노력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삼겹살축제는 삼겹살거리 상인들에게도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지만, 창업을 결심하기 전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예비 창업가들에게도 좋은 시험무대다. 축제 기간, 골목을 가득 메운 십 수개의 플리마켓 매대들. 마땅한 자기 공간이 없는 예비 창업가들은 인파로 북적이는 축제 현장에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나온다. 쿠키, 프리저브드 플라워, 방향제 등 품목도 다양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비장의 아이템을 선보이며, 용기를 내 창업에 뛰어들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시끌벅적 음악소리로 들썩이는 오늘의 이 골목에서, 누군가는 마음 속에 희망 한 겹을 쌓아간다.
가게를 차린 지 채 1년도 안 된 삼겹살거리 새내기 임진선 사장님. 가장 최근에 들어왔지만, 사실 그녀는 서문시장과 인연이 깊다. 1992년, 두 살배기 아들을 업고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도 서문시장이 위치한 서문동이었다. 터미널 근처에서 김밥 장사를 하던 그녀는 이후 27년 간 서문동에서만 12개의 가게를 차렸고, 또 닫았다. 통닭, 매운탕, 전, 족발 등 메뉴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실패의 역사를 쓰던 그녀는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지난 해 다시 서문시장에 돌아왔다. 가게를 연 지 얼마 안 된데다, 골목에서 살짝 빗겨난 곳에 있는 가게의 위치 탓인지 마음만큼 장사가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