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소리 하나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성우 정형석은 박보검, 김수현 부럽지 않은 성우계 대세 스타다. 사진|유용석 기자 |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다. 성우 정형석(43)은 청재킷에 청바지, 에지 넘치는 양말을 신고 나타났다. 한 눈에 봐도 센스 넘치는 비주얼, 포털사이트 프로필 사진과는 너무 다른 첫인상이었다.
그는 첫마디부터 엄살을 떨었다. “목소리만 듣던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면 한걸음 쓰~윽 물러난다”며 “목소리는 멜로, 얼굴은 누아르라고도 한다”며 웃었다.
목소리 하나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성우 정형석. 그는 박보검, 김수현 부럽지 않은 성우계 대세 스타다. 2006년 성우로 전향한 이후 수백 편의 광고와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 TV와 라디오만 틀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8년째 하고 있는 MBN ‘나는 자연인이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하 일문일답은 되도록 재구성 없이 그의 화법을 살려 정리했다)
Q. 포털사이트 프로필 사진 당장 바꾸셔야겠어요. 실물이 훨씬 멋지시네요. 원래 안경도 쓰시나요?
아, 이 안경요. 돗수가 없어요. 쓸 때랑 안 쓸 때 차이가 너무 커요. 한번 보실래요?(안경을 잠깐 벗어 보이며) 아시겠죠? 그래서 오늘 같이 필요한 날엔 자주 쓰고 다닙니다.
Q. 성우 보다는 개성 있는 배우 쪽 외모 같은데요.
어디 가면 제가 와 있는데도 ‘정형석 씨 어디 계시죠?’ 하고 찾기도 해요. ‘접니다’ 하면 한걸음 쓰윽 물러나는 분도 계시죠. 열에 한 명 정도는 ‘아, 이럴 수도 있지 뭐’ 하시는데, 아홉 명 정도는 ‘아... 오...’ 하시죠. 안경 벗으면 조금 세보일 수 있잖아요. 왠지 말 탈 것 같고(웃음).
Q. 그래서 ‘목소리는 멜로인데 얼굴은 누아르’란 얘길 들으시군요.
하하. 저야 모두 감사하죠. 멜로인 것도 감사한 일이고, 느와르인 것도 감사할 뿐입니다.
Q. 벌써 8년째죠. ‘나는 자연인이다’를 론칭 때부터 함께 해왔는데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2위까지 찍은 적이 있는 국민적 프로그램이에요. 애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우리 직업이란 게 프로가 생겼다 없어지는 게 비일비재하잖아요. 내 거란 없죠. 나 혼자 잘나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생각해요. 이 프로그램은 시대적 바람이 분 것 같아요. 우리 국민들 대부분 마음 상태나 심경이 어렵고 살아가기 갑갑하고. 누구나 다 자연을 꿈꾸고, 결국엔 우리도 자연과 맞닿아 있잖아요. 우리 또한 자연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건강과 힐링을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잘 통한 것 같아요. 저도 이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잡니다. 처음엔 본방사수를 했지만 지금은 일이 바쁘다보니까 재방송이나 돈 내고 다운로드 받아서 보기도 해요.
Q.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예감 했었나요?
재미는 있는데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죠. 그리고 이런 분들이 이렇게 많을까, 의구심도 들었고요. 아마 승윤이나 (윤)택이 형도 이만큼 잘될 줄은 몰랐을 걸요.
↑ 정형석은 “목소리만 듣던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면 한걸음 쓰~윽 물러난다”며 웃었다. 사진|유용석 기자 |
나이가 10대 20대 분들에겐 요즘 SNS나 유튜브 그런 걸 보고 말벌 아저씨 허명구씨 다들 기억하고 계시죠? 그분 포함해서 지금 8년차 됐는데 한 분 한 분 다 성함이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온 얘기들, 자식에 대한 얘기, 인생에 대한 얘기들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누구 편 되게 좋았어’ ‘그거 정말 좋았어’ 말초적으로 기억하기 보다는요.
Q.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인데요. 내레이션 하다 울컥한 경우도 많았겠어요.
부모님 얘길 한다거나 자식 얘길 할 땐 저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울컥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화면으로 보지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때 저 또한 내레이션이나 멘트가 진솔해지고, 저도 모르는 멘트가 나갈 때도 있고요.
Q. 윤택 편, 이승윤 편의 색깔과 매력이 달라요. 내레이션 포인트도 다른가요?
택이 형은 택이 형대로, 승윤이는 승윤이 대로 하자, 그런 생각은 없어요. 그냥 화면을 보고 자연인을 만나는 영상이나 순간에 따라 제 자신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현장성을 중시하는 것 같고요. 라디오 DJ 같은 콘셉트로 가면 어떨까 생각했거든요. 마치 대화하듯이 옆에 있는 것처럼요. ‘뭐야’ 이러면서. 저도 모르게 속 소리도 나오고,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럴 수도 있고, 저도 모르게 동요돼서 웃게 되고 울게도 되고… 감정이입도 하게 돼요. 심야 라디오 DJ처럼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서 택이 형, 승윤이와의 케미가 있다면 그분들을 청취자나 시청자라 생각하고 내레이션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게 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Q. 극한직업이라고 하죠. 추위, 더위와 싸우면서 고생하는 두 사람에게 좀 미안할 때도 있겠어요.
미안하죠. 그게 두 사람의 몫이지만 2박 3일 추운데 가서 입수도 하고 그런 걸 보면. 주위에서 ‘내레이터가 한번 같이 가면 어떻겠느냐’ 그러는데 저도 매번 따라가는 콘셉트는 식상하고, 또 그 두 분의 롤이 있기 때문에 그걸 침범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특집 때나 한번 따라가서 자연음식 먹고 싶고 장작도 한번 패고 싶고 그래요. 아, 입수? 그건 좀 걱정이긴 하지만요. 자연산 더덕이나 산, 칡도 캐서 ‘아 이렇구나’ 그 자리에서 먹어보고도 싶고요.
Q. 한 명의 중도 하차 없이 8년간 모두 함께 했어요.
바뀌면 안 되죠. ‘아이덴티티’란 게 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왔고 물론 (다른 연예인이) 같이 가서 특별출연 같은 것은 한두 번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택이 형이나 승윤이가 지금까지 해왔던 그들의 어떤 순박함이 있거든요. 개그맨이지만, 연예인이지만, 아마 인간 윤택, 인간 이승윤이 녹아들었기 때문에 이 프로가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 자연인과 만났기 때문에. 라디오 프로가 개편해서 DJ가 바뀔 수 있지만, 사람들이 사랑하고 청취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디스크쇼'에 이종환이란 걸출한 DJ가 있었고 '별밤'에 이문세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Q.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2006년도에 성우로 전향하셨죠.
‘난타’ 배우도 오래 했었고 브로드웨이도 갔다 오고 해외도 많이 돌아다니고, 여러 공연을 통해 뮤지컬에 대한 갈증은 많이 해소된 상태였어요. 저는 무언가 잘 되고 있을 때 도전하는 편이에요. 새롭고 설레고 기대감에 찬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들을 행동에 옮기는 편이죠.
Q. 그래도 별 다른 무명시절 없이 금방 뜬 케이스 아닌가요?
1년 반 정도 암흑기가 있었죠. 그래도 감사하죠. 바람이 잘 분 것 같아요. 세상일은 노력이 중요하지만 그 일에 바람이 불어 그 사람을 날려줘야 저 사람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것 같아요.
Q. 기존 성우들이 해오던 내레이션 방식이나 틀을 깼다고 볼 수 있는데요. 처음엔 반대 분위기가 없었나요?
(‘나는 자연인이다’ 등은) 성우로서 입지를 어느 정도 다진 상태라서 인정을 해주신 것 같고요. 처음 시도할 땐 솔직히 한 줄을 못 읽었어요. ‘감성다큐 미지수’란 프로에서 들어왔을 때 제가 성우이자 배우잖아요. 나라는 배우, 나라는 사람으로 말을 하자는 모토가 컸거든요. 성우이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하니까요. 말은 어차피 정서잖아요. 전달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정서로 다가가자는 생각이 컸어요. ‘이렇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했는데,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좋아하는 걸 제 방식대로 한 거예요. 지금까지 나오신 선생님들보다 목소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내면에 있는 정서를 꺼내보자는 취지였어요.
↑ 8년째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 역시 열혈 시청자다. 사진|유용석 기자 |
음... 이런 것 같아요.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 배우가 잘 생겨야 배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매력이 있어야잖아요. 잘 생기지 않아도 매력이 있으면 마음이 간다 이런 것처럼. 성우도 똑같은 것 같아요. 목소리가 좋지 않아도 그 소리 안에 매력이 있으면… 그게 지적이든, 따뜻하든, 시크하든, 그 시대상을 반영하든, 자연스럽든, 이웃집 오빠 같든, 아빠 같은 목소리든, 뭐든 그 사람에게 담겨져 있는 게 두세 가지 풍겨진다면 아마 많은 분들에게 매력 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목소리만 좋다고 성우가 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Q. 광고출연도 많이 하셨죠?
수백 편 정도요.
Q. 얼굴이 안 나와 아쉽지 않나요?
하하하. ‘나 혼자 산다’는 (이)시언이에게 전화를 받은 건데 그게 이슈성이 있더라고요. 5분 목소리 출연이었는데 그걸 계기로 ‘
Q. 이젠 알아보는 분들도 제법 있겠어요.
‘전참시’ 끝나고는 조금 알아보시는데 그건 순간이겠죠.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기란 건 한순간이고 어차피 왔다 가는 거고.(인터뷰②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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