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인간의 위태로운 욕망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마치 얇은 천 조각 하나로 덮인 채 위태로이 본성을 숨긴 욕망이 주는 긴장감은 때때로 공포스럽고 통렬하다.
이탈리아 출신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지면에서 발을 약간 뗀 듯한, 어딘가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욕망 탐구자 구아다니노는 집요하게 들여다본 욕망을 필름으로 옮기고, 작은 돌멩이를 툭 던져 강렬한 파장을 기록하려 한다.
↑ 영화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진=‘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완성된 욕망 3부작
구아다니노는 ‘아이 엠 러브’(2009)를 시작으로 ‘비거 스플래쉬’(2015)를 거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욕망 3부작을 완성했다.
세 작품은 모두 낯선 자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깨진다는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구아다니노 영화에서 낯선 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인물이 마주하지 못했던 욕망을 끄집어내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즉 이방인이 없다면 욕망을 마주할 일도 없다.
‘아이 엠 러브’ 속 엠마(틸다 스윈튼 분)는 상류층 재벌가로 시집와 삶의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회색 같은 삶을 살던 그에게 이방인이 찾아온다. 아들의 친구이자 요리사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 분)다. 이방인과 만난 엠마는 다시 생기를 되찾고, 위태로운 욕망을 마주한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인물들의 사랑과 욕망을 거친 카메라 워크로 담아내,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다.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사진=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비거 스플래쉬’도 마찬가지다. 마리안(틸다 스윈튼 분),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분) 부부는 이탈리아 작은 섬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낯선 자들의 방문을 받는다. 마리안의 옛 연인 해리(랄프 파인즈)와 그의 딸이 개입되자 고요하기 그지없던 휴가는 질투와 욕망으로 뒤덮인다. 이들의 욕망은 곧 자신들을 깊은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국내에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대망의 욕망 3부작을 마무리한다. 1983년 이탈리아, 17살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는 가족들과 화목하면서도 따분한 휴가를 보낸다. 하지만 어느 날 24살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온 뒤 엘리오의 세상은 완전히 전복된다. 한여름 태양보다 뜨거운 두 사람의 욕망은 사랑이 되고, 두 번 다시 없을 감정으로 빠져 들어간다.
구아다니노의 욕망 3부작은 예상을 뒤엎는다. 노골적이어야 할 때 절제하며, 절제해야 할 때 은밀히 폭발한다. 그는 인간 내면을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할 줄 아는 미덕을 갖췄다.
↑ 틸다 스윈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사진=ⓒAFPBBNews=News1 |
◇ 루카 구아다니노의 뮤즈 틸다 스윈튼
대다수 감독들은 저 마다의 뮤즈나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구아다니노의 경우 영국 출신 배우 틸다 스윈튼이 그 주인공이다.
구아다니노의 주요 작품에는 틸다 스윈튼이 출연한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를 비롯해 ‘틸다 스윈튼: 러브 팩토리’(2002), ‘서스페리아’(2018) 등에서 틸다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틸다를 향한 구아다니노의 애정과 신뢰는 무한하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내게 틸다는 연기 이상의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라며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3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학생이던 구아다니노는 틸다에게 단편영화 출연을 요청했고, 틸다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 현재까지 창작자와 뮤즈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영화 ‘서스페리아’ 포스터 사진=씨나몬(주)홈초이스 |
◇ 메인 테마, 욕망의 변주 ‘서스페리아’
이탈리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은 네오 리얼리즘, 그리고 호러물이다. 네오 리얼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영화 경향이다. 아울러 이탈리아에는 ‘호러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영화감독들 대거 포진해 있을 만큼 수많은 명작 고전 호러가 유산처럼 남아있다.
구아다니노는 이탈리아 지알로 무비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신작 ‘서스페리아’를 선보인다. 고전영화를 향한 찬사를 이어온 그의 첫 호러영화인 ‘서스페리아’는 리메이크 결정 이후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서스페리아’는 마담 블랑(틸다 스윈튼 분)의 무용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에서 베를린으로 찾아온 수지
이 영화 역시 구아다니노의 메인 테마인 욕망이 변주된다. 또한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에 도입돼 현대까지 이어진 ‘마녀’ 개념을 재해석하며, 각 인물의 욕망을 전작보다 더욱 도발적으로 그려낸다. 16일 개봉.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