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영화계가 인정한 젊은 거장 봉준호 감독. 제공| CJ엔터테인먼트 |
“뭔가를 이뤘다, 진화했다,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감격스러우면서도 불안합니다. 또 다른 모험을 떠나려는 제게 ‘이것이 당신의 최종 목적지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거든요.”
금의환향한 봉준호(50) 감독은 이 같이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건만, “이미 과거”란다. 조금은 더 기쁨을 만끽해도 좋을텐데, “빨리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멈춰있기엔 아직 나는 젊다”며 겸손하게 스스로를 컨트롤 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러면서 “다른 칭찬은 다 민망한데 ‘봉준호가 하나의 장르’라는 평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며 수줍게 뿌듯함을 드러냈다. “칸에서 그리고 국내에서도. 저한테는 그 말이 더할 나위 없는 찬사였어요. 앞으로 제가 이 말을 영원히 인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정도로요.(웃음)”
그의 말처럼 마침내 봉준호를 곧 장르로 만든, 정점의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 영화인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다가가기를 희망했다. 제공|CJ엔터테인먼트 |
“누구나 아는 아주 심각한 문제인데 희망적인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결국 현재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대면하기로 했다. 영화의 마지막 감정은 물론 희망을 말하긴 하지만 역시나 슬프다. 우리 모두 바라지만 과연 그것이 이뤄질지는 안타깝게도 당장은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그런 솔직함을 담은 영화”라고 '기생충'을 소개했다.
“익숙함이라는 게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익숙함이 가진 함정이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착하고 정의롭고 명분이 있는 빈자들이 나오고, 그 반대편에는 탐욕스럽고 폭력적이거나 권모술수로 똘똘 뭉쳐있는 부자가 나오는 것? 현실 세계에도 그런 대립구도가 있지만, 굉장히 익숙한 설정이죠. 단지 그런 게 우리가 보아온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조금 더 현대적이고 사실적이면서 요즘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싶었어요.”
극중 부자로 나온 이선균 조여정 부부의 모습은 그 결이 섬세하고 다층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회 속에서 보여지는 총명함과 별개로 일상에서는 나름 순진한 구석도 있고 세련되고 매너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가 더 다가갈수록 묘하게 히스테릭한 부분이 있다.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단다.
“가난한 송강호 가족은 정감이 가기도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기도 하죠. 그런 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봉 감독의 차기작은 해외작품, 국내작품 각각 한 작품씩이다. 먼저 미국 스튜디오와 논의 중인 한 작품은 250억~300억 원대 규모로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 한국 작품 역시 비슷한 규모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라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게 없다고.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사건 이야기예요. 공포 호러 영화라고 장르를 규정할 수는 없지만(웃음)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계속 구상해온 영화로 꼭 찍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 안에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고 그 무엇 하나 튀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것이 바로 봉준호 장르. 봉 감독은 “장르를 규정할 순 없지만 메시지는 선명할 수 있다. 장르적으로 감정적으로 뒤엉키는 장면도 많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면서 “‘기생충’ 역시 그랬다. 그런 지점들을 훨씬 더 디테일하고도 과감하게 시도했다. 그것이 많은 영화인들에
‘기생충’은 지난 30일 개봉 당일 무려 5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칸 황금종려상이 인정한 작품성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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