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비밀과 앞뒤 없이 뒤엉킨 암호. 하나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난 장면들만 난해하게 조각조각 흩어져있다. ‘끝에는 뭐라도 있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버텼다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짙게 남을, 심신에 해로운 퍼즐과도 같다. 중도 포기의 미학을 새롭게 깨닫게 한 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감독 데이빗 로버트 미첼)다.
영화는 청년 백수 ‘샘’(앤드류 가필드)이 하룻밤 새 사라진 이웃집 썸녀 ‘사라’(라일리 코프)를 찾아 할리우드 실버레이크 아래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2014년 공포물 ‘팔로우’로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데이빗 로버트 미첼 감독의 신작으로 일명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납득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기괴한 장르물이다.
‘LA 언덕 위에 즐비한 저택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는 감독의 물음에서 탄생한 영화답게 대부호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음모와 부패,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암호들을 엮어냈다.
안타깝게도 그것을 풀기 위해 떠난 주인공 샘의 기묘한 모험은 일찌감치 항로를 벗어나 저 멀리 떠내려간다. 감독은 각종 은유와 함축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마음껏 담아내지만 자아도취에 빠진 탓인지 어느새 연출은 뒷전이 되고야 만다.
관객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보다 확실하게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 각종 상징을 담은 장면들을 마구 분사하는데 하나 같이 일차원적이며 개연성이 없어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결국 ‘진실’없는 ‘진실’을 향해 떠난 길고도 험한 항로에 관객들은 넉 다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광고나 노래, 영화 안에 숨겨진 비밀과 암호를 통해 감독은 ‘우리는 모두 대중문화라는 호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저 아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종 상징적인 장소들을 거쳐 전혀 납득이 가질 않는 캐릭터들의 관계들을 통해 억지로 도착한 그 모르는 일들이란 그야말로 무섭지도 슬프지도 놀랍지도 않은 감독의 지루한 망상 그 자체다. 끝없이 등장하는 ‘암호’라는 것들이나,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지점들이 허무맹랑하니 그것을 통해 완성된 ‘새로운 해석’ 역시 억지스러울 수밖에.
기괴한 시작점에서 출발해 목적지를 잃고 끝없이 해매는 여정 속에서 관객의 피로는 누적돼가고 가까스로 도착한 목적지는 그저 황량하고 당황스러울 따름이니, 스릴도 재미도 로맨스도 아닌 그저 해로운 스릴러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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