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연구가' 루시드폴은 식물의 소리를 음악으로 변환하는 실험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제공|안테나 |
(인터뷰②에 이어)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을 고수해 오던 루시드폴에게 일종의 ’전환점’이 된 이번 작업 이후 깨닫게 된 것도 상당하다. "대체로 어쿠스틱 악기 하면 내추럴하고 따뜻하다는 공식이 있는데, 정말 그럴까? 생각하게 됐다"는 그가 이번 작업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사람이 만든 소리만큼 자연의 소리에 자극적인 건 없는 것 같다"는 것.
"아날로그는 따뜻한 반면 디지털은 차갑다는 말을 많이 하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어요. 사실은 아날로그가, 훨씬 왜곡이 많죠. 이를테면 릴테입이나 LP는, 그 당시 기술상 코딩이 불가했고 전기의 힘으로 소리 기록하고 재생하려 하다 보니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지, 음의 왜곡은 훨씬 더 하거든요. 오히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더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만나게 되죠. 그러면서도 저 역시 흔히 생각하는 ’아날로그=따뜻해, 디지털=차가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원음에 가까운 자연의 소리는 뭘까. 그것도 어려운 질문이에요. 자연에 없는 소리는 자연스럽지 않은 소리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날카롭고, 나쁜 방향으로 귀를 자극하는 소리는,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라는 것이죠. 이제 더 이상, 어쿠스틱이나 디지털이냐는 무의미한 것 같아요."
이같은 깨달음은 향후 음악 작업에 드러날 더 많은 변화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다양한 음악을 하기 위해 다양한 툴을 쓰는 건지, 여러 툴을 쓰다 보니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제가 화가라면, 팔레트 위에 물감이 한 가지만 있어도 그림을 멋있게 그릴 수 있어요. 그런데 백 가지 물감이 있는데 내가 그 중 하나만 선택해서 그리는 것과, 하나밖에 없어서 그걸로만 그리는 건 다른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팔레트 위 물감 갯수를 조금씩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쿠스틱 기타 위주 음악, 내추럴한 사운드 범주 안에서 깊게 파고들려 했다면 이번 앨범을 통해선 방향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 루시드폴이 '농부'이자 '뮤지션'으로서의 목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제공|안테나 |
"요즘은, 식물들의 음악을 실험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라 ’나무는 어떤 생각을 할까’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어요. 물론 인간 기준의 사고는 아니겠지만, 나무라는 생명체 내부의 흐름을 음향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조금 더 체계화시켜서 나무와 같이 만드는 음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결혼 후 제주도에 터를 잡은 루시드폴은 "지금 환경에 너무 만족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살 자신은 없어졌다"고 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내가 농사를 못 할 수도 있지만 이 밭을 팔면 어떻게 될 지 너무 잘 안다. 주변의 나무는 다 베어지고 타운하우스가 됐다. 크지 않은, 이만한 대 땅에서 살고 있는 이들(나무)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는 것.
"반딧불이도 살고, 올해는 새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갈 데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그래서 저는, 그냥 지금처럼만 살 수 있으면 감사할 것 같고, 도시로 가거나 농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요."
’농사꾼’으로서의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없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이제 6년 정도 됐는데, 유기농 인증이나 수확량을 높이는 그런 게 목표가 아니에요. 그냥, 조금 더 알고 싶어요. 귤나무를, 레몬나무를요. 올해는 귤이 맛있게 나왔는데, 왜 해마다 다르게 나올까. 어느 해 다산하는 나무는 다음 해에 꽃을 못 피우는데, 그런 해걸이 없이 나무들도 피곤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험으로 치면 1년에 한 번 밖에 할 수 없는 실험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죠.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음악인’으로서의 목표도 같았다. "좀 더 알고 싶고, 나라는 사람의 팔레트가 있다면, 색깔이 1년에 하나도, 2년에 하나도 좋으니 점점 더 늘려가고 싶어요. 식물의 소리를 음악화 하는 작업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음악-사람이 이뤄내는 너무나 이상적인 각도의 ’트라이앵글’이.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루시드폴이고, 자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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