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규가 영화 `천문`으로 다시 한번 세종으로 돌아왔다.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배우 한석규(55)가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이후 8년 만에 세종 역으로 돌아왔다. 한석규는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이하 천문)에서 세종 역을 연기했다.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석규는 ’천문’에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2011) 이후 약 8년 만에 다시 세종을 연기했다. 그는 “47세에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을 연기했다. 당시에는 이도(세종의 이름)라는 사람의 아버지 이방원을 많이 생각했다. 이도의 엄마 생각은 안했다. 자식이 강한 왕권을 펼치도록 피를 묻힌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들로서 성장한 이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천문’에서는 세종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한석규는 “어느새 만 7년이 넘었다. 저도 50대가 됐다. 이번엔 이도라는 사람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됐다. 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나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나는 엄마의 영향이 엄청났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엄마를 생각하면 삶이 떠오른다. 산다는 것에 직접 영향을 준 건 엄마다. 날 태어나게 해줬다. 암수의 세계를 봤을 때도 자식을 살리고 키워내는 건 여성, 어미의 일이지 않나. 어미의 위대함은 게임이 안 된다. 어느 날 오리 근처를 지나가는데, 어미 오리가 새끼를 지키겠다고 나에게 이상한 소리를 내더라. 보통은 도망가지 않나. 그런데 새끼가 있으면 달려든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한석규가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이도의 아버지를, '천문'에서는 이도의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한석규는 세종의 경우 아버지가 삼촌들을 죽이고, 어머니의 가족을 죽이고, 장인을 죽이는 걸 모두 지켜봤다며, 이런 일이 세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생각했단다.
그는 “세종은 아버지가 왜 자신에게 왕을 시켰을지, 왜 가족들을 죽였는지 생각했을 거다. 세종의 어머니는 세종이 인사를 할 때마다 어땠을까. 어떤 모습으로 앉아 있을까를 생각했다. 넋 나간 얼굴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안 보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세종은 법도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했다”며 세종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했을 생각과 감정을 파헤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한석규는 영화 ‘쉬리’(1999)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최민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인 두 사람은 ‘천문’에서 뜨거운 브로맨스를 보여준다. 세종에게 장영실이 있다면, 한석규에게는 최민식이 있었다.
한석규는 최민식에 대해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사람이 최민식이다. 연기 이야기는 별로 안 하는데, 좋은 사람이다. 나에게는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재미없어하는 이야기를 서로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이라며 “나와 같은 일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지를, 연기하기 위해 질문한다. 사람은 뭔지, 삶은 뭔지를 이야기하면 보통은 재미없어 한다. 최민식 형님은 나랑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같이 놀 수 있는 사람”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 한석규가 '천문'에서 호흡을 맞춘 최민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한석규는 최민식과 “바보 같은 놀이”를 한다고. 그는 “형이랑 대학 때는 형이 천만 원이 생기면 뭘 할까 이야기하면 제가 대답을 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 때는 내가 형님에게 1억이 생기면 뭘 할지 물었다. 그 놀이를 재미있게 했다. 요새는 안 한다. 그때는 돈이 있으면 재미있을 줄 알았다. 물론 돈이 있으면 좋지만, 지금은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아니까”라며 “지금 민식이 형에게 1조 생겼다면 어디에 쓸까 물으면, 아마도 내가 조르면 같이 할 거다.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최민식과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을 묻자 한석규는 “든든했다. 좋았다. 쓸쓸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쓸쓸한 느낌도 든다. 좋은 쓸쓸함”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시간이 흐르니까 최민식 형님은 나랑 같은 류의 사람이다 싶다. 방법이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며 “형님은 ‘나에게 있어서 연기란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표현하더라. 같은 생각이다.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의미를 정확하게 안다”고 이야기했다.
한석규의 이름 앞에는 ‘연기 천재’ ‘연기 장인’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한석규에게 연기란 뭘까.
그는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나 때문에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며 “‘천문’ 촬영장에서도 선배님들을 인터뷰하러 다녔다. 신구 선배님에게도 도대체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물어봤다. 앞으로도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또한 한석규는 “연기하는 사람을 ‘액터(actor)’고 한다”며 “연기하는 사람들은 보고 듣고 말하고 반응한다. 나는 왜 말을 할까, 뭔가 반응하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한다. 뭔가 나에게 온 액션에 반응해서 여기서 일어나는 뭔가가 있으니까 감정을 말하려고 하는 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기란 뭔가 반응하는 일이고, 난 평생 반응하면서 사는 거구나 싶다. 사람이 산다는 것도 딱 태어나면서부터 반응하는 것이지 않나. 엄마 배 속에서도 반응했겠지만, 감정이라는 걸 갖고 태어나면서부터 뭐야 싶을 거다. 사람이 갖고 태어난 감정은 울음이다. 웃음은 배우는 걸까 싶기도 하다. 동물 중 사람만 하하하 웃지 않나. 나이가 드니까 웃음도 많아진다. 울기도 하지만, 웃는 게 많다. 울음을 통해서 내가 살아있구나 싶고, 어느 날은 울고 나서 내가 아직도 퇴화가 안 됐구나 싶다”고 설명했다.
↑ 한석규는 "사람을 표현하는게 매력적"이라며 배우의 길에 애정을 보였다.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연기자란 “감정을 자꾸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라고도 했다. 한석규는 “얼굴로 몸짓으로 말로 표현해야 한다. 사람을 표현하는 게 매력적이다. 인생을 걸어볼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에 프라이드가 있다. 우리 ‘액터’만큼 사람에 대해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건 없다. 죽어야 끝나는 공부라고 표현할 만큼 계속 사람을 탐구하고, 그만큼 공부하려면 꽤 방대하지 않나. 끊임이 없다. 텍스트도 많고, 사람, 자연히 범위가 넓어진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은 반응한다. 인간이 반응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둬야 한다”며 자신의 연기론을 펼쳤다.
한석규는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보통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라”는 말 한마디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라는 의미 하나까지 집요하게 고민했고, 그 반대의 의미까지 되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석규는 “내가 태어난 건 엄마 아버지 두 남녀가 만나서였다. 그렇다면 그 위의 두 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나라는 사람 전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중 러브스토리는 몇 개나 있었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석규는 끊임없이 자신을, 인간을, 삶을 탐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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