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포 스스로 단백질 찌꺼기 잡아먹는 ‘자가 포식 기능’
- 치매, 파킨슨 등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활용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치매는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됐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7년, 712만명의 노인 중 치매 환자 수는 72만5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 진단을 받은 셈이다.
치매 환자가 늘면서 소요되는 비용도 재앙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 치매환자 총 관리비용은 13조2000억 원에 달했다. 2020년엔 18조8000억 원, 2040년에는 63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치매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경제적 고통을 안긴다. 치매환자 1명에게 들어가는 연간 총 비용은 2015년 기준 약 2033만원. 특히 초기에 적절한 치매 치료와 관리를 못해 중증화되면 부담은 7∼8배 늘어난다.
이처럼 치매는 빠르게 늙어가는 전 세계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치매 치료와 관리비용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의료와 제약바이오업계는 수십 년 전부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연구해왔다. '치매 정복'의 꿈에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하며 치료제 개발에 적극 나서왔다. 치매 정복은 요원한 꿈일까?
◆대규모 제약사들 뛰어들었지만…치료제 개발은 아직
치매는 발생 원인에 따라 알츠하이머성, 혈관성, 루이소체, 전두엽 치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50~75%를 차지한다. 머크, 로슈, 일라이릴리, 화이자, 노바티스, 사노피 등 대규모 제약사들이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 합성 감소,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침착, 타우(Tau) 단백질의 과인산화로 인한 신경세포 손상 등을 억제할 방법을 다양한 경로로 연구해왔다.
현재 시판 중인 치매 관련 의약품은 에자이의 '아리셉트', 노바티스의 '엑셀론', 머츠의 '나멘다', 존슨앤존슨의 '라자딘' 등 4개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치매 치료제 워너 램버트사의 '코그넥스'는 199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약들은 대부분 증세를 완화시키거나 진행을 조금 늦추는 작용을 할 뿐이어서 근본적 치매 치료제는 아직까지 없는 상황이다.
◆몸 속 세포청소부 ‘오토파지’, 치매 정복 실마리 될까
이런 상황에서 2016년 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일본 도쿄공업대 오스미 요시노리 명예교수의 ‘오토파지’(autophagyㆍ자가포식기능)’ 연구 발표가 치매와 파킨슨, 암 등과 같은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오토파지(Autophagy)란 세포 스스로(Auto)가 잡아 먹는(Phagy) ‘자가 포식 기능’으로 세포의 노폐물이나 독성 단백질의 청소 기능뿐만 아니라 이를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세포의 ‘재활용 시스템’이다. 사람이나 쥐 등 포유류, 식물, 곤충 등 세포에 핵이 있는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생명현상이다. 오토파지가 활성화되면 세포내의 노폐물이나 독성 단백질 찌거기를 세포막 성분으로 에워싸는 자가소포체 주머니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분해효소를 지닌 세포내 '재활용센터' 리소좀과 융합하여 노폐물을 분해시키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한다. 이러한 '새포내 재활용시스템'에 해당하는 오토파지 작용 과정과 관련 유전자를 규명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오스미 교수가 오토파지 활성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 15개를 발견한 것이다.
‘자가포식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면 각종 질병의 단초가 된다. 단백질 찌꺼기가 넘쳐 세포 밖으로 나오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암을 유발할 수 있고, 뇌에 쌓이면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을 일으킬 수 있다. 오스미 교수의 이번 연구는 자가포식기능을 특정 질병이나 부위에 활성화시켜 세포 노페물과 단백질 찌꺼기들을 제거해 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암, 감염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오스미 교수에 따르면, “세포의 오토파지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물질을 발견한다면 파킨슨이나 치매, 암과 같은 난치병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Brain-DAP’개발… 메디헬프라인과 기술협약
국내 연구진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자가포식기능에 관심을 갖고 여러 정부 부처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는 세포내 자가포식기능을 활성화 시키는데 효과가 있는 퇴행성뇌질환 천연물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해냈다.
KIST 양현옥 박사팀이 개발한 항파킨슨병 치료제 ‘Brain-DAP’은 자가포식기능을 통해 정상 신경세포는 보호하고 세포내의 노폐물과 독성 단백질 응집체를 제거하여 도파민 분비를 정상화 시킴으로써 항파킨슨 효과가 있다. ‘Brain-DAP’의 구성 생약은 전통적으로 민간과 한방에서 자주 쓰인 천연물 소재다. 알려진 부작용이 없고 병용요법에 제한이 없는 장점이 있다. ‘Brain-DAP’는 동물효능시험에서 탁월한 파킨슨 질환 개선 효과와 인지기능 개선, 치매 예방 효과를 확인했고, 부작용이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는 이런 기술을 지난해 4월 ㈜메디헬프라인에 이전하고, 연구협력을 위한 협약식을 맺었다. 식약처로부터 파킨슨 질환에 대한 2상 임상시험 계획(IND) 승인을 받아 시험 시작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지기능개선 건강기능식품 비답(B. DAP)을 출시하고 지속적인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메디헬프라인은 부설 연구소 ‘브레인답(Brain DAP)’을 통해 자가포식기능 활성화 기술을 이용한 치매와 파킨슨병 치료 신약 개발은 물론 치매 예방 및 개선의 두뇌 에어로빅인 ‘뇌어로빅’ 운동법을 개발, 노인대학, 치매예방센터 등에 보급을 진행 중인 기업이다. 박옥남 메디헬프라인 대표는 “’오토파지(자가포식기능) 활성화 플랫폼 기술’ 을 토대로 개발한 기억력 개선제인 ‘비답(B. DAP)’을 출시했다.”며 “아울러 뇌어로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가적 질환인 치매의 예방과 치유에 앞장설 것”이라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됐다. 현재 치료법이 없는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장애, 파킨슨병을 비롯한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에 오토파지(Autophagy)가 그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전진 매경헬스 기자 [ ist1076@mkhealth.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