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공천 후에는 탈락자들의 반발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 '공천 파동'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닌 듯합니다.
새누리당은 어제 1차 공천자 21명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포함됐습니다.
그러자 김종인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당장 반발하며 비대위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어제 공천이 박근혜 위원장이 알아서 한 것이라며 공천위의 발표가 박근혜 위원장의 묵인하에 이뤄진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김종인 비대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종인 / 새누리당 비대위원
- "발표를 하려면 박근혜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발표할 거 아냐. 나 같은 사람은 할 역할이 없어"
김 비대위원은 또 '새누리당 내부에는 쇄신을 방해하려는 성향이 더 많다', '이런 점을 박 위원장이 얼마나 참작하고 공천에 반영하려는지 모르겠다', '어제 공천은 그런 의지가 담겨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쇄신 의지가 없다는 뜻일까요?
김 비대위원과 함께 새누리당 비대위 내 대표적인 쇄신파로 꼽히는 이상돈 비대위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대위원은 “비대위 내부에서 이재오 의원에 대한 공천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의를 요청했는데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또다시 뒤바뀌는 일이 발생했고, 앞으로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오 의원에 대한 비대위의 재심의 요청을 공천위가 무시하고 그냥 발표했다는 뜻입니다.
두 비대위원의 반발에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어제 공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박 위원장은 오늘 정당대표 라디오 연설에서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챙기고 국민에게 드린 약속은 반드시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일꾼들을 국민 여러분에게 추천하고자 한다'며 어제 공천이 나쁘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의 태도가 모호하다는 김종인 비대위원, 그리고 이재오 의원 공천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 박근혜 비대위원장.
두 사람은 이제 갈라서는 걸까요?
민주통합당도 공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22일과 24일 두 차례 수도권과 영남, 충청, 강원 일부 지역의 공천 확정자와 경선 대상 후보들을 발표했지만, 탈락자들이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사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일했던 사람을 경선대상자로 선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광주에서는 경선 선거인단 모집과 관련된 인사가 선관위 조사를 받던 도중 투신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해 한명숙 대표가 사과까지 했습니다.
▶ 인터뷰 : 한명숙 / 민주통합당 대표
- "엄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천 잡음보다 더 심각한 건 민주통합당의 공천에 실망해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진보 논객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민주당이 현역 의원 위주로 단수 공천을 하고, 경쟁이 심한 곳은 국민참여경선으로 돌리면서 정치 신인이 본선에 진출할 기회는 급감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누리당과 혁신 경쟁에서 처지고 야권연대를 내버린다면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어제 한겨레 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38.2%로 민주통합당의 지지율 32.9%을 앞질렀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민주통합당이 쭉 앞서가던 판세가 바뀐 셈입니다.
'총선 후보 공천 등 정당혁신 노력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중 어느 쪽이 더 신뢰가 가느냐'는 질문에도 47.3%가 새누리당을 택했고, 민주통합당은 38.5%에 그쳤습니다.
이쯤 되면 이번 총선이 민주통합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다시 수정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폐족이라 불렸던 친노 세력에게 다시 부활할 기회를 주고,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돈 봉투 사건에도 다시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민심.
민심은 늘 그랬듯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누가 더 국민을 위하는지, 또 누가 더 혁신을 잘하는지에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