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130석도 어려울 수 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수도권 압승을 필두로 부산 경남 지역의 선전을 묶어 내심 과반의석까지 노렸던 게 바로 한 달 전 일인데 말입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0.7%로, 민주통합 당의 지지율 32.5%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이 실시한 서울 주요지역에 대한 지난주 여론조사도 민주당은 33%, 새누리당은 39%로 새누리당에 뒤지고 있습니다.
지역별 가상 대결에서도 애초 예상과 다른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서는 어제 공천을 받은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가 일찌감치 공천을 받아 기반을 다지던 정세균 민주통합당 후보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선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홍사덕 후보가 43%, 정세균 후보가 32.3%로 홍 후보가 앞섰고,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가 24.3%, 정세균 후보가 31.8%로 정 후보가 앞섰습니다.
한겨레 여론조사를 보면, 4번째 빅매치를 벌이는 서대문갑에서는 이성헌 새누리당 후보가 우상호 민주당 후보를 46.1%대, 33.9%로 크게 앞섰습니다.
경기도 일산서구에서도 새누리당 김영선 후보가 민주통합당 김현미 후보를 41.2% 대 37.6%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일보의 동작을 여론조사에서는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가 37.5%, 이계안 민주통합당 후보가 35.7%를 보였습니다.
수도권 여론의 향배를 알 수 있는 주요 접전지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민주통합당 후보를 대부분 앞선 셈입니다.
이쯤 되면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의 전망은 그야말로 헛물을 켠 꼴이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 돈 봉투 사건, 디도스 파문 등 새누리당에는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어떻게 분위기가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었을까요?
정치평론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는 민주통합당의 자승자박이라는 말이 맞을 듯싶습니다.
소위 잘나가던 민주통합당은 한명숙 대표가 한미 FTA 폐기 발언을 하면서 급격히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한명숙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한명숙 / 민주통합당 대표(2월8일)
- "이 상태로는 발효시킬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발효 이전에 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19대 국회와 정권교체를 통해 폐기시킬 것입니다."
뒤늦게 폐기 대신 재협상으로 발언 수위를 낮췄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습니다.
이 허점을 새누리당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날 선 말입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FTA를 추진하다고 해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그동안 새누리당과 사이가 서먹서먹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 인터뷰 : 이명박 / 대통령
- "민주화 시대에, 우리가 무슨 독재시대도 아니고, 외국 대사관 앞에 찾아가서 문서를 전달하는 그런 모양이란 것은 국격을 매우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미 FTA 폐기 발언으로 싸늘해진 민심을 본 민주통합당은 그 이후 진행된 공천에서는 아예 찬물을 들이부은 꼴이 됐습니다.
단수공천지역을 중심으로 1차 공천자를 발표했다고는 하나 탈락한 현역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과거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까지 경선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광주에서는 모바일 선거인단을 모집하던 책임자가 선거과열로 투신자살해 당 대표가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 인터뷰 : 한명숙 / 민주통합당 대표
- "엄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심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분 챙기기와 나눠먹기식 공천이 계속되면서 급기야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공천 업무를 일시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 인터뷰 : 강철규 /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장(3월1일)
- "통합할 때만 해도 국민을 무겁게 생각하더니 국민은 딴전에 두고 각자의 이익이라든가, 당선에 너무 연연해서 국민을 잠시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월요일 민주통합당은 호남 현역 의원 6명을 대폭 물갈이하는 단호함을 보였습니다.
공천 과정이 더 진행되면 호남 지역의 현역 의원 교체율이 50%를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는 민심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배여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식어버린 민심을 다시 데우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임종석, 신계륜, 이화영, 이부영 후보의 공천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까지 공천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까지 가세해 저런 사람들도 공천을 받는데, 왜 나는 떨어졌느냐는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공천 후유증이 있는 것은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마찬가지지만, 그 후유증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새누리당의 '친이계 학살' 논란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쇄신의 몸부림으로 비치는 있습니다.
반면 민주통합당의 진통은 이미 승자의 오만함에 빠져 여전히 과거 구태에 미련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공통된 얘기입니다.
수족관이 깨져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고 있는데도 여전히 수족관이 튼튼하다고 나 홀로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민주통합당은 4년 전 민심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정말 다 잊은 것일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