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오늘부터 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됐습니다.
여야 모두 총선에 사활을 걸며 필승 전략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보통 집권 말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리는 만큼 여당에 불리하다는 게 통설이지만, 오히려 어수선한 곳은 야권입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야권 연대를 통해 판세의 극적인 반전을 꾀했습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한명숙 / 민주통합당 대표(3월19일)
- "국민이 이기는 시대를 여는 국민단일 후보, 야권 단일후보는 단결할 것이고 민생과 정의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정책 연대를 하겠다. 기틀을 세우는데 힘쓰겠다. 더욱 치열하게 MB 새누리당에 맞서겠다"
그런데 이 단결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발단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경선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전략공천을 거절하고, 경선을 하겠다며 통 큰 모습을 보였지만, 선거 캠프 실무자의 문자메시지가 결국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난 17일 전화여론조사가 시작된 서울 관악을에서는 이정희 캠프와 김희철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 사이에 치열한 문자메시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전화여론조사는 20~30대와, 40~50대, 60대 세 구간으로 나눠 이뤄졌습니다.
오전에 40~50대와 60대에 대한 전화여론조사가 끝나자 이정희 캠프의 실무자는 지지자들에게 급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중장년층에 대한 여론조사에 응했다 하더라도 또 전화가 걸려오면 자신의 나이를 20~30대로 속여서 다시 응답하라는 얘기입니다.
김희철 후보를 돕던 시의원도 40세 이상 질문이 끝나고, 19~39세 응답해주세요라며 다량의 문자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결국, 이정희 대표가 단일 후보로 확정됐지만, 연령을 속여 응답하라는 실무자의 과잉 충성은 이정희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고개 숙인 이정희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정희 / 통합진보당 공동대표(3월20일)
- "관악을 야권단일화 경선과 관련해 선거캠프의 두 당직자가 문자를 보낸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후보자로서 불미스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이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사과한다"
이정희 대표는 재경선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정도로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민주통합당 김희철 후보는 재경선을 거부했습니다.
▶ 인터뷰 : 김희철 / 민주통합당 후보(어제)
- "이정희 후보께서는 내가 한 일이 아니고 보좌관이 한 일이다. 이것이 영향 있다면 재경선을 요구를 해왔다. 이런 이정희 후보의 발언은 정말 있을 수 없다. 죄를 저질로 놓고 면죄부를 달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다른 지역 경선에서 진 민주통합당 후보 4명도 단체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도 여론조사 조작의 피해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야권연대가 깨질 위기로 가자 통합진보당은 양당 지도부 만남을 긴급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정희 대표가 자진사퇴해야 야권연대 불씨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박용진 / 민주통합당 대변인
- "양당의 지도부가 만나서 공동의 관심사인 야권연대 전체 판 유지와 총선의 공동 승리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백번 공감하지만, 문제를 야기한 측의 태산 같은 책임감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말씀드린다"
태산 같은 책임감을 전제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정희 대표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어젯밤 긴급회의를 가졌습니다.
이정희 대표의 사퇴론과 출마론이 팽팽히 맞섰지만, 결국은 사퇴를 하지 않고 주민에게 심판을 받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경선 불복으로 규정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40개 지역에서 패배했어도 깨끗이 승복했는데,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패배한 7개 지역에서 모두 경선에 불복하고 반발하고 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야권연대는 이미 깨진 듯 보입니다.
야권연대가 깨지면 선거구도는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새누리당 대 야권연대의 일대일 구도가 새누리당 대 다자 구도로 바뀌게 됩니다.
새누리당이 이득을 볼 게 분명합니다..
새누리당 이상일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오늘 브리핑을 통해
"이정희 대표는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대표직을 사퇴하고 총선 불출마도 선언해야 한다."
고 압박했습니다.
민주통합당도 그리고 통합진보당도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양당 지도부는 또 한 번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제 갈 길을 갈까요?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야권에 유리할 것으로 봤던 이번 총선 구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