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원장 쪽 유민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이메일 보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출이 끝나는 대로 며칠 내에 대선 출마에 대해 견해를 밝히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1차에서 끝나면 16일 이후, 결선투표까지 가면 23일 이후 견해를 밝히겠다는 겁니다.
어쨌든 추석 전에는 안 원장의 거치가 분명히 드러날 것 같습니다.
발표 시기를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출 이후로 잡은 것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어제 이런 이메일을 보냈을까요?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 경선 이후, 그리고 추석 전 견해를 밝힐 것이라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이전부터 예상했습니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없는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왜 뒤늦게, 하필이면 어제 보냈을까요?
공교롭게도 어제 많은 신문의 1면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율이 안 원장을 앞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야권 후보로 줄곧 안 원장에게 뒤처졌던 문재인 후보가 당내 경선 10연승의 바람을 타고 역전에 성공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를 보면, 이달 3일 10%포인트 이상 벌어졌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을 격차가 좁혀졌고, 급기야 39.5% 대 37.1%로 역전됐습니다.
어제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44.2%, 안철수 원장이 34.5%를 나타내 양자 간 지지율 격차는 오차범위 밖인 9.7%p까지 벌어졌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경선에서 연승을 거두면 유권자들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준 것과 안철수 원장이 출마 여부 발표를 미루면서 쌓인 피로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이런 상황을 안철수 원장 쪽은 위기로 받아들였을까요?
그래서 어제 이메일을 통해 대선 출마 입장 발표를 알린 걸까요?
여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서 며칠 내로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고 한 대목도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통상 일주일 정도는 컨벤션 효과라고 해서 그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실리기 마련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서 행보 하나하나가 기사가 됐듯 말입니다.
만일 이대로 문재인 후보가 된다고 하면, 문재인 후보는 대선 후보 선출 뒤 이런 컨벤션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곧바로 안철수 원장의 출마 여부가 세간의 관심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철수 원장 쪽은 민주통합당을 배려한 게 맞는 걸까요?
앞서 지난 6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주통합당은 경선의 분수령이 될 광주 전남 경선을 치르기 직전 느닷없이 금태섭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안철수 협박'을 폭로했습니다.
다음날 신문 1면에서 광주 전남 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후보의 얼굴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금태섭 변호사와 정준길 새누리당 전 공보위원이 전화 통화한 날이 4일인데, 왜 이틀이나 지나 민주통합당 잔칫날 발표했을까요?
이왕 폭로를 이틀 늦춘 거를 하루 더 늦출 수는 없었을까요?
민주통합당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지난 7월에도 이런 일은 있었습니다.
안 원장이 저서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7월 19일은 문 후보가 리얼미터의 다자구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앞선 결과가 나온 날이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막힌 타이밍이 아닐까요?
안철수 원장 쪽은 민주통합당 일정을 신경 쓰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며, 우연의 일치 일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뉴스 M에 출연했던 금태섭 변호사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금태섭 / 변호사(8월17일)
- "안철수 원장은 안철수 원장 나름대로 본인이에게 주어지는 국민의 지지와 관심에 대해서 어떻게 옳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그걸 고민을 하는 거지, 다른 분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에서는 민주당 나름대로 방향을 가지고 열심히 하실 거고, 새누리당은 새누리당 대로 그러실 거고 그렇게 어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분들이 각자 열심히 하면서 경쟁을 하면 결과적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민주통합당 쪽은 내심 불쾌하면서도 그 불편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 쪽에 민주당을 죽이는 정치 천재가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문재인 후보 진영도 심기는 불편하지만 속앓이는 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안 원장은 박근혜 후보와 싸우기 위해 곧 함께 해야 할 정치적 '동지'이기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듯합니다.
지난 8월 문재인 후보가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말을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후보(8월14일)
- "(안철수 원장과 연대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교수가 출마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후보가 선출되고 나면 곧바로 이루어야 할 과제다. 어떤 과정, 방법을 거치든 범야권 단일화 연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단일화연대과정에서 민주당 중심으로 이루어야겠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민주통합당 후보가 정해지고, 안철수 원장 역시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면 가까운 '정치적 동지'는 살벌한 후보 단일화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후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총공세에 나설 것이고, 안 원장 쪽 역시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지지율 상승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신경전이 지나쳐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나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원장 역시 인품 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네거티브 공방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란 부모와 형제조차도 갈라놓은 비정한 것이니 두 사람의 앞날을 예단하긴 어렵겠죠.
아마도 올해 한가위 연휴는 박근혜와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라는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할지 모르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 (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