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쇄신 경쟁을 촉발시킨 것은 야권입니다.
후보 단일화를 풀 열쇠가 바로 정치 쇄신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먼저 지역구 의원 200명, 비례대표 100명, 책임총리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현재 의원 수는 줄이지 않되, 현역 지역구 의원을 200명으로 축소하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라고 문 후보 측은 강조합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입니다.
안 후보는 바로 다음날 문 후보보다 더 강력한 정치쇄신안을 제시했습니다.
국회의원 숫자 자체를 200명까지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축소하자는 게 핵심입니다.
안철수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무소속 후보(10월23일)
- "국회의원 수를 줄여서 국민과 고통을 분담해야 합니다. 국회의원 수가 적어서 일을 못하는 겁니까 가장 큰 책임은 다수당 여당에 있습니다. 민생 토론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바뀌면 어떤 그림이 될까요. 바람직한 국회의 변화 되지 않을까요. 두 번째는 국민 세금으로 매년 수백억씩 국고 보조금 줍니다. 이제는 정치권이 스스로 액수를 줄이고 시급한 민생에 쓰거나 정당이 새로운 정책에 예산 써야 합니다. 국민을 위해 써야 합니다. 세 번째로 현재 정당의 중앙당 모델입니다. 중앙당이 축소 혹은 폐지돼야 패거리 정치 사라집니다. 개헌하지 않고도 가능합니다. 정당들이 합의하면 지금 당장도 가능합니다."
국민의 여망을 담았다고, 안 후보 쪽은 큰소리쳤지만, 정치권에서는 '정치를 모르는 아마추어다', '정치 혁신을 위해 정치를 축소하자는 말인가'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대선을 앞두고 국민 입맛에 맞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었을 것 같습니다.
안 후보가 '기존 정치를 싫어하고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 요구를 대중의 어리석음으로 폄훼한 것'이라고 반격했을 정도니까요.
안 후보에 대해 말을 아꼈던 문재인 후보 역시 뼈아픈 말을 꺼냈습니다.
어제 새정치 광주선언에서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10월28일)
- "대통령 인사권 개혁의 방향은 법령과 규칙이 정한 범위 안에서 인사를 하도록 인사권 행사를 통제하고 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인사권을 정상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관료와 상층 엘리트의 기득권만을 강화시켜 오히려 기득권 재생산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사유화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 모두가 권한 외의 인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 인사권 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를 1/10로 줄이자는 안 후보의 제안이 잘못됐음을 천명한 셈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보다는, 또 국회의원 숫자를 100명 줄이기보다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정상화하고,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쇄신이라는 겁니다.
안 후보 쪽으로서는 한 방 맞은 걸까요?
그러나 두 진영이 정치 쇄신을 놓고 티격태격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권형 4년 중임제 개헌이나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정치쇄신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게는 사활을 건 정책이자, 공약입니다.
누가 더 설득력이 있느냐, 또 명분을 얻느냐에 따라 후보 단일화의 저울추를 기울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울추에 무게를 더하려고 서로 다투다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진보 진영은 이런 식의 정치 쇄신 경쟁을 꼭 나쁘게 보는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의 정치와 미래를 바꾸기 위한 정치 쇄신 경쟁은 후보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선거 승리에 집착한 후보 단일화 경쟁은 패배를 가져오지만, 근본적인 한국 정치 변화에 대한 경쟁은 선거 승리를 부산물로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연대가 지역 연합이었다면, 또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선거 승리를 위한 연합이었다면,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가치 연합' '정치연합'이 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새누리당은 물론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2등과 3등이 1등을 이기려는 게임 논리로만 정치에 접근하고 있다', '두 진영이 야합으로 정권을 잡을 때 친문과 친안의 권력 갈등으로 국정운영이 파탄 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새누리당에게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인가 봅니다.
문제는 이런 야권의 정치 쇄신 경쟁에 맞불을 놓은 새누리당의 정치쇄신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총선 당시 내세웠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포기'나 최근 내놓은 특별감찰관제 도입, 대통령 인사권 분산,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는 약하다는 반성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쇄신과 관련해 야권에 선수를 빼앗겼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박 후보는 주말 내내 여성 관련 행사에 참석해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야말로 가장 큰 정치쇄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 후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대선 후보(10월28일)
- "나라의 안전과 평안, 가정 위해 여성 여러분이 앞장서줘야 합니다. 모두가 변화를 얘기하고 쇄신을 주장하지만, 여성대통령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와 쇄신입니다. 아무리 큰 변화라도 이거보다 더 큰 변화는 없죠. 여성 리더십은 세계적 추세로, 우리나라도 지금이야말로 민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희생과 강한 여성리더십이 필요할 때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여성 지도자 탄생은 쇄신이라고 평가합니다."
박 후보는 아울러 집권한다면, 먼저 여성들을 정부 요직에 중용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여성 대통령'이야말로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는 흉내 낼 수 없는 박근혜 후보만의 정치 쇄신이 맞으니까요.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캠프 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상설특검과 총리의 장관 3배수 추천권과 같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어쨌든, 정치쇄신은 올해 대선의 핵심 키워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안철수 현상'이 말해 주 듯, 정치 쇄신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자, 미래 정치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캠프가 그 국민 열망을 잘 담을지, 또 그것을 잘 실천할 지가 표에도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MBN 뉴스 M(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