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북한의 도발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바짝 당겨진 고무줄처럼 여전히 팽팽합니다.
이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북한군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가상의 목표로 상정해 포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입니다.
바다를 가로질러 먼 섬을 향해 포탄이 날아가는 모습이라니, 섬뜩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진에는 이 훈련을 김정은이 쌍안경으로 보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 대한 무력도발 훈련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지도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조선중앙TV의 보도를 잠깐 듣겠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어제)
- "김정은 원수님께서 대연평도 백령도 타격의 실전 능력 판정을 위한 실탄 사격 훈련을 지도하셨다. 대연평도, 백령도 타격에 인입되는(동원되는) 포병구분대들이 실전과 유사한 조건에서 분담된 목표에 대한 화력 타격 가능성과…."
북한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을 겁니다.
군부로 대변되는 강경파가 무력도발을 부추기고 있다면, 외교라인의 온건파들은 그래도 협상에 무게를 둘 것입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직접 무력도발 훈련을 지도했다면, 강경파가 온건파를 누르고 득세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북한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무력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진을 공개하고, 이런 강경 발언을 내놓는 것이 단순 엄포용일지 모릅니다.
쌍안경으로 훈련을 참관하는 김정은의 겉모습과 속내가 다를지도 모릅니다.
무력도발을 하면 한국과 미국이 더는 참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정말 전면적으로 치달으면 3대째 내려온 자신의 왕국이 지구상에서 소멸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김정은의 진짜 속내가 어느 쪽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다행인 것은 한반도 주변 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먼저 북한의 혈맹이었던 중국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반발해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광규 교수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남광규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 "시진핑 체제에서는 다시 대화를 복원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북한의 행동을 자제시키면서 이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막무가내 행동을 무조건 감쌌던 중국의 태도가 '이제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로 바뀐다면 북한으로서는 고립무원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는 무력도발이나 핵실험과 같은 벼랑 끝 전술을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미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 핵실험 뒤 처음 '대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중단하고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북한의 고립 탈피와 국제 사회 참여를 위해 함께 노력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강경하던 박근혜 정부의 태도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 인터뷰 : 박근혜 대통령(3월14일)
-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해나가겠지만, 북한이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가동해 남북이 평화롭게 살아갈 기반을 닦아나갈 것입니다."
북한이 변한다면 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어쨌든 이 일촉즉발의 군사적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중국의 태도 변화, 미국과 한국의 대화 메시지를 김정은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최북단 연평도에도 불안감이 아주 가신 건 아니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연평도 현지 주민과 전화로 잠깐 얘기해보겠습니다.
<연평도 주민 전화연결>
이 주민의 말만 듣고 한반도 분위기가 군사적 긴장에서 대화 국면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너무 이릅니다.
안보 불안감도 문제지만, 불감증도 큰 화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북한 무력 도발에 철저히 대비를 하되, 협상의 물꼬를 트는 노력도 동반돼야겠죠.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과 파국을 원하는 당사국들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재밌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접속 장애가 발생했는데, 외부 세력으로부터 해킹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키 리졸브' 훈련과 때를 같이해, 주요 인터넷 서버들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는 적대세력들의 비열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매번 남을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당한 걸까요?
당해봐야 남의 고통을 안다고 한다면, 북한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북한 해킹은 우리 정부는 아니라고 하니, 어디일까요?
자작극이라는 말도 있던데요.
어쨌거나 한반도에도 빨리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