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협상용 무력시위로 미사일을 활용해왔는데요.
그동안 어느 시점에 어떤 목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지, 박호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북한의 탄도 미사일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입니다.
「1998년 8월,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를 앞두고 첫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실은 '대포동 1호'를 쏘았습니다.」
일본 북부 상공을 지나 1,600km를 날아가자 일본 열도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유엔은 성명을 발표했지만, 곧 북미 미사일 회담이 열렸고, 북한은 식량지원과 경제제재 완화라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반복했고, 도발과 제재, 협상, 재도발의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2006년 7월 북한은 대포동 2호와 7기의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하고, 」그해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미사일과 핵을 양손에 쥔 북한은 이듬해 방코델타아시아의 자금 동결을 풀고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는 2·13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이듬해 4월 은하 2호를 쏘아 올리고, 5월엔 2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북미 양국은 지난해 2월 베이징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과 식량지원을 담은 2.29 합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작년 4월과 12월 잇달아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쏘아 올렸고, 」유엔이 제재를 강화하자 '핵선제 타격'을 거론하며 위협의 수위를 올려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은 핵무기 능력 강화를 위한 필수 과정인 미사일 시험발사를 국제사회에 대한 무력시위와 체제결속에 활용하며 1석 3조의 효과를 노려왔습니다.
MBN뉴스 박호근입니다.
영상편집:원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