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첫 삽을 뜨면서 시작된 개성공단이 오늘 잔류 인원 50명이 철수하고 나면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기나긴 겨울잠에 들어갑니다.
착공에서 철수까지 개성공단의 우여곡절 10년을 윤석정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지난 2003년 6월 남과 북의 정치, 경제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성공단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논의가 시작된 지 4년 만에 맺은 결실입니다.
▶ 인터뷰 : 정몽헌 / 현대아산 회장(2003년 당시)
- "꼭 이 사업을 성공시킬 것이며, 그에 대한 모든 결실은 반드시 온 겨레와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듬해인 2004년 12월 첫 제품이 생산되면서 개성공단은 명실상부한 남북 교류와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위기도 많았습니다.
2008년 6월 북측은 우리가 '3통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며 공단의 인력과 물자 통행을 제한하는 등 수차례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던 2010년 이후로는 우리 정부도 개성공단의 신규 투자와 통행을 제한하는 맞불을 놨습니다.
이후 3년여 간 근근이 가동되던 개성공단은 지난달 북측이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로 사용된 남북 군 통신선을 차단하면서 결정타를 맞게 됩니다.
그 뒤로도 북한은 공단 방문을 차단하고 북한 근로자를 철수시키며 우리를 압박했고, 우리 정부도 근로자 철수라는 강수로 맞서면서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결국, 오늘 오후 개성공단의 전력과 급수를 담당하는 근무자 50명이 철수하면 10년 동안 남북이 함께 일궈 온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 상태나 다름없어집니다.
MBN뉴스 윤석정입니다.
영상편집: 원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