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난 2일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확인된 사실은 참여정부에서 국가기록원으로 회의록이 넘어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시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에는 분명히 회의록 초본, 검찰은 복구본으로 부르는 회의록이 담겨 있었다는 겁니다.
회의록이 왜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또 초본은 이지원에서 왜 삭제된 것일까요?
이 모든 궁금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회의록 초본 삭제를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정황상 노 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삭제를 지시했다면, 왜 그랬을까요?
새누리당이나 보수 언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서해 NLL이라든지, 아니면 김정일 위원장에게 굴욕적인 얘기를 했기 때문에 없앴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초본을 본 뒤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왜 저런 말을 한 것으로 돼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수정본을 만들고 초본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초본에는 김 위원장에게 자신을 낮추는 '저는'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최종본에는 이것이 '나는'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확인된 내용은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 얘기를 들어보시죠
▶ 노무현 전 대통령(2007년 11월1일)
- "NLL 건드리지말라는 말은 정확합니다. 할 수있는 일이든 아니든 간에 저는 갑갑합니다만, 말은 정확한 얘기입니다. 헌법 건드리지말아라 헌법 위배되는 합의는 하지말아라, 그건 아니거든요, 설사 NLL에 관해서 어떤 변경 합의를 한다 할지라도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에 북한 땅도 우리영토로 되어있으니깐요. 그래서 NLL이 위로 올라가든 아래로 내려오든 그건 우리 영토하고는 아무관계 없는것이니깐 우리 헌법하곤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어떻든 NLL 안건드리고 왔습니다."
노무현 재단이나 민주당 쪽에서는 최종본이 있으니 초본을 삭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초본의 불분명한 문구와 대통령의 의도와 다르게 표현된 문구를 수정해 최종본을 만들었다면, 초본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국가기록원으로 넘기지 않은 것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 후임 대통령이 보기가 어려우니 넘기지 말고 국정원에만 남기도록 했다는 겁니다.
이른바 '선의의 폐기'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돌아가시고 없으니 당시 비서관들이 솔직히 증언만 해준다면, 그래도 폐기 이유를 알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궁금함은 문재인 의원에 대한 것입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참여정부 문서를 국가기록원으로 넘기는 업무를 총괄했던 문 의원은 왜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는지, 그리고 초본은 왜 삭제됐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해 NLL 포기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을 보자고 강하게 주장한 사람은 바로 문재인 의원입니다.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이런 주장을 했을까요?
지난 대선 당시 문 의원의 말을 들어보죠.
▶ 인터뷰 : 문재인 / 민주당 의원(작년 12월 17일)
- "지금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NLL 회의록 그렇죠? 제가 그 회의록 최종적으로 감수하고 정부 보존 기록으로 남겨두고 나온 사람입니다. 제가 그 회의록 속에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하거나 다시 NLL 주장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언급 있다면 제가 책임진다고 진작에 공언했죠?"
이 말을 들어보면 적어도 문재인 의원은 다른 많은 사람처럼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남아 있고, 또 청와대 이지원에도 있다고 굳게 믿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삭제를 지시했을 때 문재인 의원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일부 언론보도처럼 조명균 당시 안보비서관에게 단독으로 삭제지시를 했다는 뜻일까요?
이것도 선뜻 이해가 안 됩니다.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문재인이 노무현의 친구가 아니라 노무현이 문재인의 친구'라고 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입니다.
그런 비서실장 몰래 비서관에게만 은밀히 지시할 정도로 회의록 삭제가 큰일이었을까요?
수석비서관회의와 같은 공개된 자리에서 삭제 지시를 했다면, 문재인 의원이 몰랐을 리 없습니다.
노무현 재단은 조명균 전 비서관에게 확인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삭제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검찰에 한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의원이나 노무현 재단은 어쩌면 아직도 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됐고, 또 국가기록원에 넘어가지 않았는지 진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요.
세 번째 궁금함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총괄 선대본부장을 지낸 김무성 의원이나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주중 대사가 어떻게 회의록 내용을 알고 있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당시 내용입니다.
▶ 인터뷰 :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뷰스앤뉴스 보도)
-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당시 국정원장)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 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짖듯 쭉 읽었다."
▶ 권영세-녹음파일
- "NLL 대화록, 대화록 있잖아요? 참, 자료 구하는건 문제가 아닌데…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
국정원에 보관된 회의록은 비밀취급인가를 받은 사람만 볼 수 있는데, 적어도 이들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당은 이를 근거로 회의록이 불법으로 유출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이에 대해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문헌 의원이 구두로 전달한 내용과 몇몇 자료를 근거로 만든 문건을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습니다.
회의록은 정말 지난 대선과정에서 유출된 것일까요?
새누리당은 회의록 삭제가, 민주당은 회의록 불법유출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 가지 핵심 의문이 모두 풀렸으면 합니다.
검찰이 수사하든, 아니면 당사자들의 양심고백이 있든 빨리 의문이 풀렸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취재 : 김희경 이민경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