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까지 공산주의는 사라져야 할 이념이었고,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었습니다.
반공과 반북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선 시대 였습니다.
반공과 반북은 산업화 논리와 결합해 훗날 권력의 독재와 탄압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는 주장의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사상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새삼 조명받았고, 남북간 평화가 국정운영의 중요 목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안보라는 가치보다는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가치가 더 자주 들렸던 시대입니다.
심지어 보수 진영에서는 이 시기 안보는 무너졌고, 좌파가 득세하면서 종북주의자들이 우후죽순 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와 안보.
서로 충돌할 수 없는, 충돌해서도 안되는 이 두 가치가 시대에 따라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지 내일이면 3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다시 이 두 가치의 충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들의 대선 개입 트위터 글은 2만6550건으로 자동 복사 프로그램을 통해 무려 121만건이 퍼져 나갔습니다.
이글은 다시 팔로우를 한 사람을 통해 퍼져 나갔을테니 어느 정도 확대 재생산 된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선거전술적으로 잘 기획된 2만6천종의 사이버 삐라를 121만장 만들어 뿌린 것이다"
이런 활동은 지난 대선 뿐 아니라 과거 총선 등 지난 2년 동안 이뤄져 왔다는게 검찰 수사 결과입니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활동이 드러났다며 총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한길 / 민주당 대표
-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그끝이 어딘지 우린 아직 알수 없다. 이젠 박근혜 대통령도 내가 댓글땜에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생각하느냐 묻기에도 망설여질것이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이승만 시대의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수준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까지 촉구하는 극단적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설마 4.19 혁명을 다시 일으키자는 얘기는 아니겠죠?
설마 대선 불복과 재선거로 가자는 의미는 아니겠죠?
국정원은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이 직접 작성한 글은 139건 뿐이며, 나머지는 단순 리트윗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북한의 트위터를 이용한 대남 선전선동에 대응해 방어심리전을 벌인 것일 뿐 국내 정치 관여나 선거 개입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최경환 / 새누리당 원내대표
-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우리 여권에서도 솔직히 할 말이 많다. 수사 결과 발표할 때마다 사사건건 정치권 왈가왈부한다면 포청천이 와도 정쟁밖에 안될 것이다. 대선 후 1년 결산을 대선불복, 정쟁지속으로 날을 지새울 수 없다."
야권은 확실히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고 있습니다.
여권과 국정원은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한 정당한 활동이고,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사적인 의견 표현일 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 정말 민주주의 위기일까요? 아닐까요?
민주주의 위기를 논하는 지금 다른 한쪽에서는 안보의 위기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어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6차 공판에서는 RO 조직모임의 결정적 증거인 녹취록 제보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가림막 뒤에서 한 증언이었지만, 그의 증언은 분명했습니다.
"RO 조직의 총책은 이석기 의원이었다"
"RO 조직은 철저한 비밀 점조직이며,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내 조직명은 남철민이다. 조직명은 북한에서 내려보냈다고 생각했다. 수(김일성)에 대한 충성 결의를 다짐했다"
제보자인 이 씨는 90년대 주체사상을 학습하며 RO 조직원으로 활동했지만, 천안함 사태를 보며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정말 심각한 안보의 적을 내부에서 키웠던 셈입니다.
한때 혁명조직에 있었다가 전향했다는 이광백 씨가 어제 시사마이크에 출연해 한 말을 잠깐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광백 / 자유조선방송 대표(어제 시사마이크)
- "비밀지하혁명조직의 운영방식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소조라고 그러죠. 3인이나 5명이 한개 소조 단위로 운영되고 있고, 그 소조 밖의 사람들은 누가 우리 조직원이지도 잘 모르고요. 바로 그 상급이라고 하는데요. 나를 지도하는 소조 책임자 이외에는 그 위 상급이 누구인지 모르도록 돼 있어요."
이 씨의 말이 사실인지, 정말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를 한 것인지 판단은 법원이 할테니 여기서 섣불리 언급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 재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안보의 위기때문입니다.
정말 우리의 안보는 불안한 것인지, 아니면 과장된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국정원 트위터 글과 RO 조직이 과연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내일이면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실제적인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위협을 모른 척하고 평화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은 민주주의를 후퇴하는 일임이 자명합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민주주의와 안보는 양립 불가가 아니라 서로 제각각의 영역에서 발현될 수 있는 가치라는 사실을 정치권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