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김경희 이혼’ ‘장성택 사형 집행’
일본 아사히 신문은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처형되기 직전, 부인 김경희와 이혼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김경희도 이혼에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부부관계를 유지한 채 장성택을 처형할 경우 이른바 '로열패밀리'에 미칠지도 모를 악영향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40여년간 북한의 ‘2인자’로서 굵직한 삶을 살아온 장성택이지만 가족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경희 당 비서의 연애사는 북한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재학 때 서로 알게 된 두 사람의 연애는 김 비서의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귀에 들어갔고, 뒷조사에서 장성택의 출신성분을 파악한 김 주석은 이들의 사랑을 만류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 사랑을 키워가자, 김 주석은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전학시켰습니다.
김경희는 그러나 매 주말마다 벤츠 승용차를 타고 장성택을 만나기 위해 원산까지 달려갔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결혼에 성공한 장성택은 김경희와 결혼 뒤에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장성택은 1972년 노동당 지도부 과장을 시작으로 89년에는 세계청년학생춘전의 공로로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가문에서 사실상 2인자로 등극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를 두고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 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 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했다”고 했습니다.
장성택-김경희 부부의 사랑은 프랑스 유학 중이던 딸 장금송이 부모의 결혼 반대를 비관해 자살하면서 금이 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2006년 8월 29살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의 한 빌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자살 원인은 집안에서 "출신 성분이 나쁘다"며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평양 귀환까지 독촉받자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수면제를 과다복용한 장금송은 사망 이틀 만에 그를 보살피던 운전기사와 가정부에게 발견됐습니다.
딸을 잃고 장성택과 멀어진 김경희는 2011년
최근 심한 치매증상에 몸져누웠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던 김경희는 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최측근이었던 김책의 장남으로 지난 13일 사망한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의 장의위 명단에 김경희의 이름을 여섯 번째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