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한이 아닌 다음에야 하나됨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찌보면, 각양각색의 생각과 철학이 표출되고, 그것이 충돌하고, 다시 수렴되는 과정이야말로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역사는 분명 그렇게 발전해왔으니까요.
새누리당내에서도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생각과는 다른 이런 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재오 의원의 개헌 얘기가 대표적입니다.
이 의원은 어제 열린 당 최고위원 중진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박 대통령과 이재오 의원의 얘기를 차례로 들어보시죠
▶ 박근혜 대통령(6일 신년 기자회견)
- "개헌론과 관련해선 지난해를 돌아보면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든가 거의 이런 것으로 일년이 다 갔다. 그런데 올해 개헌이라는 것은 워낙 큰 이슈이기 떄문에 이게 한 번 시작되면 블랙홀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할 것을 못낸다"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8일)
- "대통령은 후보시절 2가지를 공약했다. 돈이 드는 것은 돈이 안 되니까 물릴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안 드는 공약은 지켜야 된다. 첫째가 대통령 되고 개헌논의 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공약 지켜야 한다"
돈 안드는 개헌 공약을 왜 안지키느냐는 겁니다.
이 의원은 특히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75%가 개헌을 하라고 답했다며 대통령의 불통까지 언급했습니다.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8일)
- "대다수 국민들 응답에 따라가는 것이 소통이고, 반대로 가는 것이 불통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개헌은 블랙홀'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조목 조목 비판했습니다.
▶ 인터뷰 : 이재오 / 새누리당 의원(8일)
- "개헌문제는 대통령께서 블랙홀이 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이해한다. 하지만 개헌논의의 제어와 능력에 따라 개헌논의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블랙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이 의원은 집권 2년차인 올해야말로 개헌 적기이며, 2월 임시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의원이 말하는 개헌의 핵심은 87년 체제에서 만들어진 5년 대통령 단임제를 비롯한 현 헌법 체계의 변화입니다.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개헌 얘기가 시작되면 정말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가 개헌에 묻힐 지도 모릅니다.
아마 박 대통령은 이런 점을 우려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후보 시절 개헌 논의 공약을 했던 터라 참으로 난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이재오 의원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옆에서 듣고 있던 서청원 의원이 박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섰습니다.
들어보죠.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8일)
- "이재오 의원이 개헌 얘기를 했는데 난 기억한다. 이명박 정부때 개헌한다고 김형오 국회의장 밑에 개헌특의 만들었다. 그때 모든 언론이 이재오 의원이 정권의 2인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힘이 있었다. 그런데 추진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때 힘있는 이재오 의원은 개헌을 추진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개헌 얘기를 하냐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옆에 있던 최경환 원내대표 역시 굳은 얼굴 표정이었습니다.
서 의원은 지금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 경제살리기에 나설 때라며 박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8일)
- "지금 우리는 개헌 문제보다도 국민들 먹고사는 경제 살리는데 우선 과제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이 의원도 틀리지 않지만 시간과 타이밍이 필요하다."
두 사람은 중앙대 동문으로 친분이 두텁지만, 아무래도 개헌 문제로 사이에 금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이재오 의원은 개헌 공약을 지키는 것이 소통이라며 박 대통령에게 훈수 아닌 훈수를 둔 셈입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 말고도 박 대통령에게 훈수를 두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철도 파업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했던 김무성 의원은 부산 경남지역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무언가 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소통 문제에 대해서는) 야당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틀린 얘기를 하더라도 들어주는 모습이 우리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새누리당이 최근 경직됐고 자율적 의사결정이나 아이디어가 없는데, 이 모든게 정당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 돼서 오는 안 좋은 현상이다"
철도 파업 사례를 설명하며 나온 얘기이긴 합니다만, 김무성 의원이 박 대통령의 소통 문제와 당의 거수기 한계를 직접 거론한 것은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에게 훈수를 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몽준 의원은 지난 7일 청와대 초청 만찬에서 박 대통령에게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 해제를 제안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금지한 5·24조치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정몽준 새누리당 최고위원. 7일 만찬)
박 대통령은 북한이 약속을 안 지켜서 문제라며 사실상 정 의원의 훈수를 거절했습니다.
정몽준 의원으로서는 나름 대북 관계에 대한 식견도 있고, 지금의 남북관계 변화를 위해 5.24 조치의 해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대통령은 좀 더 신중했던 모양입니다.
어제 새누리당 상임고문들도 청와대에서 만찬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이런 저런 훈수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언론 담당 특임장관을 임명해 언론과 소통을 하는게 중요하다"(8일 청와대 만찬 참석자)
"민주 정치는 정당정치가 아닌가, 정당정치라는 기초 위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정당과 대화가 소통의 핵심 아니겠는가"(8일 청와대만찬 참석자)
대통령이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듣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할말을 못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생각이나 정책과 다른 이런 저런 '훈수'들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다른 느낌이 드는 걸까요?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대통령과 다른 생각들이 좀 더 많이, 좀 더 거칠게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늘 보아왔듯이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