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분노, 슬픔이 뒤섞인 시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수습하고 내일로 가기는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그 수습책의 하나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로 내정했습니다.
청렴 강직성을 갖춘데다 소신과 추진력이 강해 60년 적폐를 걷어내고 국가개조를 하는 데 적격이라는 게 청와대의 발탁 배경입니다.
안대희 내정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안대희 /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 (어제)
- "청문회를 통과하여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국가의 기본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제 개인적인 삶을 모두 버리고 이러한 비정상적 관행의 제거와 부정부패 척결을 통하여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여야의 평가는 역시나 정반대입니다.
여야의 말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이완구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안대희 총리 지명자에 대해서 우리당은 대통께서 진솔한 자세로 국민 마음을 읽은 인사가 아니었나 생각. 앞으로 안대희 총리 지명자가 소신과 법치에 의해서 쓴소리도 마다않는 책임있는 총리가 돼 주실 것을 기대하고…"
▶ 인터뷰 : 김한길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선거운동 시작 첫날 대통령의 총리 등 인사 발표 있었다. 선거 영향 미치는 의도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국정원장 경질됐다. 대통령 세월호 대책은 너무 빨랐고 국정원장 경질은 너무 늦었다. "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은 안대희 내정자가 책임총리로서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안 내정자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을 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여러 차례 한 것을 여권은 기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야권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상 총리는 여전히 허수아비일 뿐이라고 보는 모양입니다.
안대희 내정자가 '대독총리' '의전 총리'에서 벗어나 '책임총리'로 세월호 참사를 수습할 수 있을까요?
안대희 내정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정홍원 총리처럼,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나는 사람은 또 있습니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국가안보실장입니다.
노무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와 대선 개입 댓글,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까지는 박근혜 정부 내내 국정원은 정치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야권은 끊임없이 남 원장의 경질을 촉구했고, 보수진영은 남 원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 수습 과정에서 야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는 야권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고 판단했을까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경질도 예상됐던 부분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한 발언이 경질 사유가 된 듯합니다.
북한의 위협만이 나라를 지키는 안보의 대상은 아닙니다.
광의적으로 보면 대지진과 각종 사고, 재난 등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안보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정부들은 국가안전보장회의 NSC가 재난까지 총괄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김장수 실장은 아마도 이 부분을 놓친 듯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와 국방을 담당했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실장은 떠나지만, 또 다른 축이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은 남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가장 신임했던 남재준 원장과 김장수 실장이 모두 떠나는 마당에 김기춘 실장까지 없으면 국정 운영의 연속성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판단했을까요?
하지만, 야권은 이 부분을 또 집요하게 파고들 생각인가 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구원파 신도들이 김기춘 실장을 살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구원파들이 유병언을 지키기 위해 김기춘 실장과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 되레 김 실장에게는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물론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요.
어쨌든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총리와 국정원장 국가안보실장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던 사람들부터 바꾼 겁니다.
이는 앞으로 있을 개각의 폭과 강도를 예상케 합니다.
영광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겠죠.
그러나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 역시 마음이 편치 못할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멍에와 상처가 너무 깊고 깊어 그들이 감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높은 공직에 오르는 게 결코 축하해 줄 일은 아닌가 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