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로 내정됐을 때만 해도 고향이 충청권인데다 언론인 출신이어서 주목받았습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문 후보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6월10일)
- "갑자기 나라로부터 이런 부름을 받아서 저는 기쁘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렵고 엄중합니다. 이런 상황을 제가 과연 헤쳐나갈 수 있을지…. 안전한 대한민국, 행복한 대한민국, 또 나라의 기본을 다시 만드는 그런 일을 제가 미력이나마 저의 마지막 여생을 모아서 나라를 위해 받쳐볼까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튿날부터 문 후보자에게 상상하기 싫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문 후보자가 자초했습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6월11일)
- "(책임총리는 어떻게?) 책임총리 그런 것도 전 지금 처음 들어보는 얘기고, 하여튼 열심히 (청문회) 준비하겠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문 후보자가 과거 강연 때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입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 (2011년)
-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 할 수는 있겠지. 속으로…. 하지만 저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는 시련이 필요하다,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한테 고난을 주신 것으로 생각해요. 남북 분단을 만들었어. 그것도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그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것은 거의 공산주의 사상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 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에요. 서민주의의 상징은 게으른 거야. 그걸 깨자고 들어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는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줬고, 우리 민족은 이를 극복해왔다는 종교적 해석도 있었지만, 엄격한 사실만을 추구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일제 통치를 미화했다는 반론이 맞섰습니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윤치호를 마치 멘토인 것처럼 여러 번 언급했고, 국가가 공식으로 사과한 제주 4.3 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문 후보자의 불행은 과거 강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날부터 이어진 불친절한 해명 때문이었습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6월12일 아침 자택 앞)
- "내가 설명을, 어제 홍보실 통해서 설명했어요. 그걸 그대로… 그 이상 할 얘기는 아끼겠어요. 사과는 무슨 사과할 게 있어요."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6월12일 정부청사)
- "(사과할 생각 없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러신가요?) 어제저녁에 다 해명했지요. 수고하세요."
보도가 나간 다음 날 본뜻은 그게 아니었지만, 혹시나 상처입은 분들이 있다면 사과하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어쨌든 사과할 게 없다는 문 후보자의 말은 국민에게는 거만하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야권은 청문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했고, 여권 내에서도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퇴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권 수뇌부는 그래도 청문회까지는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청문회까지 간다면 국회 표결을 통해 문 후보자를 인준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 인터뷰 : 윤상현 / 새누리당 사무총장(6월13일)
- "(후보자를) 있는 그대로 보고 차분하게 검증을 해야만 합니다. 일방적인 낙인찍기, 딱지 붙이기 이런 것은 해서는 안 됩니다."
▶ 인터뷰 : 안철수 /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6월13일)
- "대통령의 인사가 오히려 불통과 분열의 불씨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이 인사를 취소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론은 좀처럼 반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의 사퇴 성명이 나오는 등 더 악화일로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사과할 게 없다던 문 후보자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자 (6월15일)
- "본의와 다르게 상처를 받으신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이것은 일반 역사 인식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역사의 종교적 인식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과 함께 늘 기회가 있었다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입니다."
꼬일 대로 꼬인다고 해야 할까요?
문 후보자가 사과를 했지만, 하필 앉아서 사과한 것이 또 논란이 됐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 날 언론인 출신답지 않게 거친 말로 기자들 질문에 답한 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자 (6월16일)
- "(야당 쪽에서 사퇴여론이 아직도 거센데,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거는 야당에 가서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요."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자 (6월16일)
-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붙잡은 손 누구야?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어느 신문이죠?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불만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심기가 불편했어도 '야당에 가서 물어보라' '어느 신문이냐'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는 친박 좌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지킴이로 불리는 서청원 의원의 마음마저 돌려놨습니다.
서 의원은 이틀째 문 후보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서청원 / 새무리당 의원(6월17일)
- "(문 후보자 스스로) 언행에 대한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 의원의 자진사퇴 요구가 나오면서 어제 창성동 별관은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혹시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청와대에서 보내야 하는 임명동의안과 청문요청서도 국회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명목상 이유는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결제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문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 기류가 바뀌었다는 설이 유력했습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어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면서 사퇴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 인터뷰 : 문창극 / 국무총리 후보자(6월17일)
- "저는 사퇴할 생각이 현재까지 없습니다. 저는 청문회에 가서 국민에게 소상하게 말씀드리고 이해를 구하겠다."
오늘은 문 후보자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실적 위협이 없는 일본에 대해서는 독도를 내세워 이를 과장하고, 실제 위협이 있는 북한은 무조건 감싼다고 비판한 글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주일간 계속되는 문 후보자의 논란 속에 박 대통령의 지지율도 급락했습니다.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 17일 42.7%를 기록했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이 보도되기 직전인 11일 51.1%에서 불과 6일 만에 10%포인트 가까이 빠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50.2%로 부정평가가 취임 후 처음 절반을 넘었습니다.(전국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 유무선 혼합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쯤 되면 문 후보자가 받을 심리적 압박은 상당할 것 같습니다.
문 후보자는 어떤 결단을 내릴까요?
국회 표결까지 가도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또 어떤 결단을 내릴까요?
천당과 지옥을 오간 지난 일주일.
문 후보자와 청와대는 무엇을 배웠고, 우리 사회는 또 무엇을 배웠을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