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세계일보 보도로 시작된 정윤회 문건 파동은 이제 수습 단계로 접어든 모양새입니다.
정윤회 씨와 비서관 3인방이 '십상시 모임'을 열어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 등 주요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문건 내용은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난 상태입니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문건의 사실 가능성을 6할 이상이라고 했지만, 검찰은 십상시 모임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여기저기서 들은 풍문을 박관천 전 경정에게 얘기했고, 박관천 전 경정은 이를 기반으로 '정윤회' 문건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정윤회 씨 말대로 누군가의 불장난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박관천 전 경정의 그저 그런 정보보고였던 걸까요?
▶ 인터뷰 : 정윤회 / 12월 10일 검찰 출석 당시
-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또 그 불장난에 춤춘 사람이 누군지 다 밝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국정 운영 계획과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개입 의혹설이 있는데 어떤 입장이십니까?)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정윤회 씨는 아마도 이 불장난의 배후로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경정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박지만 회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윤회 씨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올 3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박지만 미행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정윤회 씨 측에서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건대, 이 보도로 정윤회 씨와 박지만 회장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사이가 됐을지 모릅니다.
박지만 회장은 엊그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지만, 미행설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 인터뷰 : 박지만 / EG 회장 (12월 15일)
- "(검찰에 출석하셨는데요. 심경이 어떠신지요?) 들어가서 제가 알고 있는 사실대로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더 이상 할 얘기 없습니다. (정윤회 씨랑 권력 암투설이 있는데 어떤 입장이십니까?) 검찰에서 얘기하겠습니다. (검찰에서는 7인회를 문건유출 배후자로 지목을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 (세계일보로부터 문건 받아 보셨어요?) 들어가서 이야기할게요. (아직도 정윤회 씨가 미행을 했다고 생각 하십니까?)"
애초 미행을 했다는 오토바이 기사의 자술서가 있다는 추측이 많았지만, 박 회장은 자술서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행설을 뒷받침할 자료는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것을 공개하지 않을까요?
박 회장은 미행설을 박관천 전 경정과 자신의 비서를 지냈던 전 모씨로부터 들었다고 검찰에 밝혔다고 합니다.
전 씨는 청와대가 문건 작성과 유출에 관여한 것으로 보던 이른바 '7인 모임'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물론 '7인 모임' 역시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검찰은 결론 냈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예전부터 불편한 사이였던 박지만 회장과 정윤회 씨는 '미행설'로 서로를 완전히 불신하게 됐고, 그 와중에 박관천 전 경정은 정윤회 씨와 관련한 풍문을 듣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고 그 보고서는 박 회장과 가깝다는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전달됩니다.
박지만 회장 측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조치를 취해달라 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이는 정윤회 씨와 비서관 3인방이 막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계일보 보도가 나옵니다.
세계일보 기자는 지난 6월 박지만 회장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박지만 회장을 미행하고 견제하는 정윤회 씨와 박지만 회장 측의 한판 대결로 읽힐 만한 정말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검찰이 밝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은 박 회장과 관계없이 지난 2월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나올 때 갖고 나온 것으로 한 경위와 숨진 최 경위가 유포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엄청난 불장난도 없었고, 정윤회 씨와 박지만 회장의 권력암투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실 확인이 안 된 보고서와 잘못된 유포가 낳은 말 그대로 '찌라시'만 있을 뿐입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말입니다.
▶ 인터뷰 : 새누리예결위원 오찬 모두 발언(7일)
- "한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를 한 후에 여러 곳에서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일방적인 주장에 흔들리지 마시고,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경제가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여전히 뭔가 있었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 인터뷰 : 문희상 /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12월16일)
-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폐쇄적인 국정운영으로 빚어진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가 개인 일탈로 종결지으려 하면 국회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 실시를 피해갈수 없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문체부 국과장 교체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개입과 최순실 씨의 민원 의혹은 그냥 묻히는 듯 보입니다.
여론은 이런 검찰 조사 결과에 대해 개운치 않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덩달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도 취임 이후 처음으로 30%대로 내려갔습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주일 전 대비 6.6%p 하락한 39.7%('매우 잘함' 12.1% + '잘하는 편' 27.6%)를 기록했습니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6.3%p 상승한 52.1%('매우 잘못함' 31.3% + '잘못하는 편' 20.8%)로 조사됐습니다.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추월했고, 콘크리트 지지율 40%대가 처음 깨진 겁니다.
(12월 8일~12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 전화면접 및 자동응답전화 방식. 표본오차 95%±2.0%p)
박 대통령 말대로 그 문건들이 찌라시로 판정이 났다 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스타일 변화와 청와대 쇄신은 불가피하다는게 중론입니다.
총리와 비서실장까지 아우르는 전면적인 개각을 하고, 장관보다는 보좌관과 비서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의원 시절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전화했더니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는 말처럼, 대통령이 참모들과 대면기회를 늘리고 소통을 강화하고 인사시스템을 투명하게 하라는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2, 제3의 정윤회 문건은 또 등장할 것이
집권 3년차는 역대 어느 정부를 보더라도 항상 레임덕이라는 위기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기서 뭔가 단단히 조여매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 역시 레임덕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청와대에서 쇄신과 변화의 바람이 불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