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심 차게 회고록을 내놨지만,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현 정부와 관계를 고려해 민감한 부분은 뺐다고 했지만, 세종시 이전 문제나 남북관계의 중요한 뒷얘기를 공개함으로써 현 정부에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 전 대통령 측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참모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애증'을 회고록에 담자고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반대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대통령과 애증은 뭘까요?
그리고 이 전 대통령은 왜 반대했을까요?
박 대통령과 애증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겁니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기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떼어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에 MB측과 박근혜 캠프 쪽은 사활을 건 전쟁을 벌였습니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가져갔고, 진 쪽은 목숨을 연명하기 어려운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친박계는 공천학살에서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게 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동안 세를 키운 친박계는 4대 강과 정부청사 이전 등 주요 현안마다 이명박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친이계로서는 이런 친박계의 반대로 적잖이 국정 운영의 타격을 입었을 것입니다.
김두우 전 수석은 에피소드집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에서 이명박-박근혜의 관계 설정에 따라 정치가 춤을 췄는데, 이를 담지 않으면 큰 줄기가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소용없었다고 적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현직이 우선이다. 현직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배려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비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청와대는 불쾌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세종시 이전을 반대한 것은 정운찬 총리를 견제하려는 것이었다는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박근혜 정부의 이런 반응이 과민반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두우 / MB정부 홍보수석 (1월 30일)
- "청와대에서 이 책을 회고록을 다시 한 번 정밀하게 보시면, 상당 부분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이 회고록을 한번 뒤져서 보십시오. 정운찬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서 세종시에 반대했다 이런 표현은 없습니다."
▶ 인터뷰 : 김효재 / 전 청와대 정무수석(MB회고록 참여)
- "(10조 이상의 돈을 북한에서 요구했다는 내용이 현 정부에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이 현 정부에 부담된다는 논리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요,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습니다. 무언가 주는 대가로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말라는 것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 전 대통령에 요구한 바입니다. 그 요구를 이 전 대통령은 충실히 지킨 것이고요."
하지만, 현 정부는 남북관계의 비사를 공개함으로써 북한이 반발할 것은 뻔하고, 이는 현 정부의 남북관계를 더 꼬이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쪽 사람들도 논란에 가세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월령 제한없이 수입하기로 부시 미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면합의를 했다는 김종훈 의원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쇠고기 전면 개방을 이면 합의했고,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킨 것 뿐인데 촛불시위로 피해는 자신만 봤다는 걸까요?
문재인 의원은 이를 정면 반박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통화에서 월령 제한을 분명히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노 전 대통령을 두 차례 예방했을 때 이 전 대통령이 '쇠고기 수입 문제를 해결하고 물러나면 좋겠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식의 조건이 달렸다고 충분히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나 노 전 대통령 어느 한 쪽이 기억을 잘못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남북관계 비사를 공개함으로써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했다는 논란도 더해졌습니다.
김두우 전 수석은 집필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 대통령 기록물을 수차례 열람한 사실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한겨레는 보도했습니다.
참모들의 기억이나 메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기록물에 근거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군사 외교 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은 15~30년까지 비공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런 논란이 일어날 줄 모르고회고록을 낸 것일까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후 사후에 회고록을 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왜 회고록을 서둘러 냈을까요?
아마도 4대강이나 자원외교, 녹색성장 등 치적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현 정부들어 국정조사까지 가면서 평가절하되고 무력화될까 두려웠던 걸까요?
그런 방어적 성격으로 회고록을 썼다면, 아마도 여론은 곱지 않을 겁니다.
국정조사가 끝난 뒤 4대강이나 자원외교에 대한 평가가 있을 것이고, 정치적 행위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것인데, 이렇게 조급하게 당시 참모들과 대통령이 서둘러 평가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책 제목으로 '나는 소명 받은 대통령'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망교회 냄새가 난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소명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 신에게 부여받은 임무가 바로 소명입니다.
소명 받은 대통령이란 곧 신이 선택한 대통령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한 대통령이라는 뜻입니다.
신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했을까요?
그리고 이 전 대통령은 그 소명을 다했던 것일까요?
이 평가는 소명 받은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과 역사가 하는 것이고, 신이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전 대통령은 외국에서 머물다 귀국하면
▶ 인터뷰 : 이명박 / 전 대통령
- "(청와대가 회고록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고 많아요, 수고 많다고…."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조금 더 말을 아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