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비극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성 회장은 오늘 새벽을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뒤 택시를 타고 종로구 평창동으로 갔습니다.
오전 9시 넘어 북한산 형제봉 밑에서 휴대전화 위치가 파악됐고, 이후 11시 정토사에서도 전파가 확인됐습니다.
그리고는 오후 3시30분 형제봉 매표소 인근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성 회장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요?
집에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결백하다는 말과 함께 자살하겠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제 성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성완종 / 경남기업 전 회장 (4월 8일)
- "저는 MB맨이 아닙니다. 어떻게 MB정부 피해자가 MB맨 일 수 있겠습니까? 2007년 허태열 의원 소개로 박근혜 후보를 만나 뵙게 됐습니다. 이후 (당시)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습니다."
▶ 인터뷰 : 성완종 / 경남기업 전 회장 (4월 8일)
- "지지해 주셨던 고향 분들이 느꼈을 실망감을 생각하면, 참으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절대 부도덕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의 사리사욕을 챙기고 싶었다면 지난 4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아니면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얼마든지 자금을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고, 비리 횡령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또 MB맨이 아니라 오히려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 소환조사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검찰이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을까요?
MB측과 관계가 있다는 정황을 제시했을까요?
성 회장은 오늘 오전 10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순간 구속될 것으로 예감했을까요?
성 회장이 정말 억울한지, MB맨을 겨냥한 표적수사의 희생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검찰이 밝힐 대목입니다.
검찰로서는 성 회장의 자살로 수사에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MB 측근들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두우 / MB정부 홍보수석 (빅5단독)
- "저희들의 생각은 중요한게 아니고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별로 따로 이야기할게 없습니다. 일절 다른 언론들도 그렇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걸 말할 시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성 회장은 어렸을 때 친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갔고, 아버지 학대와 새엄마 홀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불우하게 자랐지만, 그래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처지를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학재단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 회장이 지난 2012년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한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성완종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中
- "어머니가 서울로, 지금으로 말한면 가정부로 가셔서 돈 벌러 가셨는데….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니한테 어머니 주소를 알려달라니 안 알려주시는 거에요. 가만히 생각하니 어머니 찾아 가긴 가야겠는데…. 그래가지고 할머니가 교회간 사이에 장농을 다 뒤졌어요. 어머니 주소를 확인을 했죠. 그러고선 외삼촌한테 '나 집에 가겠다'했더니 외삼촌이 돈 110원을 줘서 그 110원 받아가지고 어머니 찾아서 서울로 오게 됐죠. 그래서 110원이 내 운명이다."
▶ 인터뷰 : 성완종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中
- "초등학교 때 중퇴하고 110원 들고 서울 와서 교회에서 공부하고 어머니 돈 벌고 새벽에 신문 돌리고 낮에는 약국에서 배달하고 이렇게 같이 돈 벌어서 어머니 모시고 시골 내려가서 살림 차려서 하다가 사업해서 여기까지 온 거죠."
▶ 인터뷰 : 성완종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中
- "(건설업과는 어떻게 인연을?) 1973년에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하고 동생들하고 가정을 꾸려 살다보니까 도저히 생활 여건이 안되니까요. 그래서 (충남) 해미면 시내에 나와서 화물영업소를 했죠. 한 해 동안에 화물영업소 거간, 전화 걸어서 자동차를 소개 해줘가지고 화주한테 연결해주면 수수료를 1000원씩 받았습니다. 1000원씩 받아서 160만 원을 벌었어요. 그때 160만 원이면 큰돈이죠. 그때 90KG 쌀 한가마니가 3000원 할 때니까요. 제가 아이디어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 인터뷰 : 성완종 /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中
- "160만원 벌어가지고 버는 동안에 인근에 농협조합장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저를 잘 봤어요. 전혀 일면식 없던 분인데. 그분이 서산 토건 건설업을 하셨는데 조합장 하니 못하게 됐잖아요. '당신이 가진 지분이 200만 원이다 네가 한다면 100만 원만 다오 100만 원 나중에 벌어서 갚아라.' 200만 원 주식을 인수를 받고 100만 원 외상 100만 원 현금 드리고 그렇게 시작을 했죠.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33년 사이에…. "
어렸을 때 고생을 했고,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됐지만,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성 회장에게 친어머니는 각별함이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도 어머니를 언급했습니다.
▶ 인터뷰 : 성완종 / 경남기업 전 회장 (4월8일)
-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추모식이 고향에서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님 영정 앞에 엎드려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진실을 꼭 밝혀 드려, 떳떳한 아들이 되겠다고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성 회장을 아는 지인들은 성 회장이 이른바 지하철 네트워크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외우는 전화번호만 1000개가 넘는다고도 합니다.
특정 사람의 인맥이 아니라 여권 권력과 가까운 곳이면 항상 갔다고 합니다.
지금 여권의 핵심에는 충청 출신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성 회장이 가까운 사이였다, 배신을 당한 것이라는 말도 돕니다.
반기문 총장의 동생도 경남기업에 근무했던 터라 여러 의혹설이 번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처럼 억울할 수도, 또 그와 달리 권력 실세들과 밀접히 연결됐을 수도 있습니다.
성 회장의 죽음은 여러 의혹을 해소하기는 커녕 더 많은 의구심을 남겼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이가영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