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불과 나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방문을 10일 전격 연기함으로써 외교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당초 방미 기간인 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 외교일정이 빼곡했던 만큼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는 불가피한 측면이 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김성우 홍보수석도 “아직 국민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챙기기 위해 방미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당사국의 일방적 사정으로 정상급 일정이 취소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0년 4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뒤 아이티와 멕시코를 찾을 예정이었지만 천안함 폭침 사고 수습에 전력하기 위해 아이티와 멕시코 방문 일정은 방미를 약 1주일 앞두고 급히 취소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013년 10월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정지) 영향으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이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 일정을 모두 취소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APEC과 EAS 정상회의를 계기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이들 계획 역시 모두 취소했었다.
정부는 미측의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데 주력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이날 오전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연락을 취해 국내 사정에 따라 방미 연기 의사를 전달하고, 미측이 동의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한미는 또 조율을 거쳐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방미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우리 사정을 이해하고 연기 요청을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방미 일정을 조속히 잡으면 그만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하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도 “케리 미 국무장관도 양해를 한 것으로 알고 있고, 한미동맹이라는 관점에서도 미측이 잘 양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방미 연기가 곧바로 한미동맹의 악영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적 재난 상황에 따른 방미일정 연기로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방미 연기에 따른 외교적 결례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으며, 향후 한미 간 현안 논의에서 우리가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데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있다.
이와 함께 북핵 문제를 비롯해 한미간에 논의가 시급한 현안에 대한 대처가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해 “북핵, 북한의 정세와 도발 가능성, 우리의 대응태세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 한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를 달성하는 문제 등 여러 협의가 예상된다”고 밝혔었다.
실제 북한은 최근 대남위협 수위를 고조시켜 왔고,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등 소형화·다종화를 통한 핵능력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긴밀한 한미공조가 요구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난 4월 방미를 계기로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 비교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번 방미를 통해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다시 과시하고 이를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김성우 수석은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이 연기됐다고 해도 미국 측과 이번 방문의 주요 안건인 한반도 정세 관리 및 동북아 외교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경제협력과 한미 간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의 한 전문가는 통화에서 “대통령은 국민 정서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에 대한 강단 있는 대처가 시급한데, 그런 점에서 방미연기는 아쉬운
한미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도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가 9월로 예정된 가운데 그 이전에 방미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을지도 관심 포인트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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