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법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 정부로 이송했지만 전운(戰雲)은 오히려 짙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에 따라 국회가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조항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바꿨지만, 청와대는 "한 글자만 바꿨을 뿐 달라진 게 없다"는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당청은 물론 여당 내 친박(친 박근혜)계가 원내지도부를 겨냥해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계파 갈등이 촉발되고, 여야 관계 경색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정 의장과 여야 협의의 산물인 중재안에 청와대가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 양상으로도 전개될 수 있습니다.
일단 정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청와대와 집중적으로 물밑 접촉을 시도할 계획입니다.
정 의장은 16일 한 매체를 통해 "청와대 측에 곧 연락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로 문구를 일부 수정함으로써 위헌 소지를 제거했기 때문에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점을 직접 설득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청와대에 거부권 기류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와대로서도 거부권을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운 형국입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속에서 '거부권 정국'이 펼쳐지면 국정 운영 지지율에 타격을 가할 수 있고,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도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는 현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황 후보자를 '부적격'으로 결정 내린 상황에서 인준안을 통과시킬 방법은 정 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하고, 의결 정족수(149석)를 넘기기 위해 새누리당(160석)이 표결에 거의 전원 참여해 과반의 찬성표를 던져야 합니다.
결국 정 의장과 새누리당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총리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새누리당은 17일까지 인준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단독 처리 방침을 밝혔지만, 이미 인사청문회법상 인준 처리 시한을 넘긴 마당에 여당의 공언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야당이 인준안에 강력히 반대한다면 정 의장이 시간을 더 주고 여야간 협의를 독려할 수 있다"면서 "아울러 정 의장이 직접 제안한 중재안을 청와대가 별다른 검토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이 역시 인준안 처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나 국회의 의도와 상관없이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황 후보자 인준안이 공교롭게 맞물려 가는 형국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날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됐지만 청와대가 즉각 공식적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거부권 행사 여부는 오는 23일 또는 3
결국 이달 하순까지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국회 관계자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면서 "앞으로 보름간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여야의 당내 역학 관계나 여론에 따라 상황이 유동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