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의 자살을 놓고 여야의 공방이 뜨겁습니다.
검찰은 수사 대상자가 자살하거나 숨지면 사건을 종결시킵니다.
사후에 설령 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다릅니다.
자살한 사람을 두고 산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덮고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국정원이라고 하는 국가정보기관이 민간인 사찰을 위해 해킹 프로그램을 들여왔다면 임 과장의 자살과는 별개로 그 내막을 밝혀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야권은 임 과장의 유서에서 석연치 않은 점들을 꼬집어내고 있습니다.
우선 유서 중간에 '대북'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이라는 부분을 수정 표시해 둔 점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쓰는 유서는 감추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쓰기 마련입니다.
혹 어느 한 대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는 그런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임 모 과장은 왜 '대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이라는 단어를 수정해서 보완했을까요?
또 임 과장이 대북 정보 활동을 위해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내국인에게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는 칭찬받을 일입니다.
책임을 지고 문책을 받거나 자살을 할 일이 아닙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재인 /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불법해킹이 없었다면 무엇이 국가 정보 업무에 헌신한 분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갔는지 알 수 없다."
물론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구매했다는 흔적을 남긴 것에 대해 질책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귀신도 모르게 일을 해야 하는 게 첩보원이니까요.
하지만, 임 과장은 국정원도 밝혔지만, 대학 전산과를 나와 20년간 사이버 업무만을 한 '테크니션' 이른바 기술자입니다.
현장을 뛰는 대북 첩보요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목숨이 달린 것도 아닌 일에 흔적을 좀 남겼다고 해서 크게 문책할 일은 아니었고, 또 이로 인해 심적 고통을 받을 일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유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해킹 프로그램을 정당한 대북 활동에 사용했지만, 이것이 논란이 되자 심적 압박이 컸고, 급기야 조직과 동료 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서청원 / 새누리당 최고위원
- "국정원이 모든 걸 공개하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는데도 야당이 공세를 계속해 국정원 직원이 자살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100% 복구 가능하다는 국정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곧 밝혀질 겁니다.
그런데 임 과장은 어차피 삭제해도 100% 복구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을텐데 왜 삭제했을까요?
그리고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해킹 프로그램 자료를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야당의 공세가 잘못된 것이고, 억울하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법합니다.
새누리당내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자꾸 국정원이 정치와 선거에 연루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태호 / 새누리당 최고위원 (오늘 최고위서)
- "왜 국정원 소용돌이 안에 자주 등장해야 합니까. 국정원 본연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음지에서 소리 소문 없이 국가의 안위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게 본연 업무입니다. 이런 소용돌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업자득입니다. 국정원도 반성 해야 합니다."
무조건 국정원을 감쌀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의 말을 믿어달라 할게 아니라, 자살한 만큼 이제 그만 덮자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튀는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킨다는 비판을 받은 김태호 의원인지라, 이번 발언 역시 이런 의도였을까요?
어쨌든 국정원이 자꾸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는 것, 그리고 그
믿고 싶지만,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 의혹이 있다면, 사실을 밝히는게 세상사를 대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이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