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확실한 사과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자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결렬을 선언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대북 정보 파트에서 26년간 일하면서 남북 접촉과 관련해 경험이 풍부한 유성옥(58)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를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 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지난 24일 접촉은 협상 타결의 9부 능선에서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지뢰 도발과 관련해 직접적인 사과를 거부하고 과거처럼 주어를 빼거나 유감의 주체를 ‘남북 쌍방’으로 표기하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라는 자리를 빌려 공개적으로 “매번 반복돼온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나온 뒤 김관진 실장은 카운터파트인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앞에서 “그만두자, 결렬이다”라고 선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유 원장은 추정했다.
유 원장은 “북한이 썼던 벼랑 끝 전술을 우리가 썼는데, 이게 통한 셈”이라며 “과거 240여 차례의 남북간 합의서 중 처음으로 주체를 북한으로 해서 유감 표명을 못박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접촉은 우리 측의 승리였다고 그는 평가했다. 공동보도문의 ‘사과’가 아닌 ‘유감’이라는 표현 때문에 성과와 관련한 논란이 일었지만 “협상은 상대가 백기를 들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과거 남북관계가 남측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나쁜 갑을관계였다면, 이번에는 확성기 방송이라는 레버리지를 확보해 관계를 주도해갈 수 있는 성과도 얻었다”는 분석도 내놨다.
공동보도문 3항에 확성기 방송 중단의 조건으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를 달 수 있었던 것도 큰 성과라고 유 원장은 평가했다.
그는 또 이번 접촉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결정적인 것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꼽았다.
그는 “김양건 당 비서 등 고위 인사가 김정은에게 달려가 최고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가서 확성기 방송 중단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서면서 남북 접촉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후속조치로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숙청을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그는 예견하기도 했다.
유 원장은 특히 중국이 이번 사태 해결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봤 다. 북한의 포격 도발이 발생했던 지난 20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비공개로 중국 베이징을 다녀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이번에 충분히 협조했다고 본다”면서 “이것이 사태 해결의 여러 요인 중에 하나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얼마 전 장갑차 등 중국 병력이 북중 국경 부근 옌지(延吉)에 집결한 것도 북한에 대한 또 다른 압박이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번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은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이 CCTV를 통해 회담 장면을 지켜보고 수시로 훈령을 내렸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남북 정상회담이나 마찬가지였다.
유 원장은 “김정은이 사실상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했으나 체면을 구긴 것”이라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는 “조만간 남북 당국간 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남북 사이에는 많은 ‘정치
유 원장은 400여 차례 남북한 당국자 회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8차례나 방북한 경험이 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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