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오전 9시 41분께 짙은 회색 정장 차림으로 국회의사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국회의장실로 이동한 박 대통령은 5부요인 티타임에 참석해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을 비롯해 정의화 국회의장, 정갑윤 국회부의장, 이석현 국회부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황교안 국무총리 등 5부 요인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가 지연되면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는 당초 약속 시간보다 다소 늦은 9시 44분께 티타임 장소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는 “국정 교과서 문제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이 태스크포스(TF) 사무실을 찾아겠는데, (우리가) 감금했다고 한다”고 박 대통령에 항의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알아보세요”라고 답변했다. 이어서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최초로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이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환담을 마친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시정연설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야당 의원들의 ‘인쇄물 시위’가 논란이 되면서 약 15분가량 지연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시정연설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은 시정연설에 보이콧하지 않는대신 개별 의원들이 자율적으로 ‘민생 우선’, ‘국정교과서 반대’등의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본회의장 모니터 뒷편에 부착하고 박수를 치지 않는 침묵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정의화 국회의장은 “야당 의원, 특히 지도부에 부탁한다”면서 “우리가 삼권 분립의 나라로서 행정부나 사법부에 예를 요구하듯이 우리도 행정부나 사법부에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인쇄물 제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야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인쇄물이 부착된 채로 연설이 시작됐다.
10시 15분께 박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대통령을 맞았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기립하기는 했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이날 여당 의원들은 40분의 연설 시간 동안 55차레에 걸친 박수갈채로 화답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단 한차례의 박수도 치지 않았다.
시정연설이 끝난 뒤 나온 여야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국회에 대한 ‘일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제가 국민들과 동료 의원께 드리고 싶은 싶은 말을 그대로 대통령께서 확실하게 말해줘서 내용도 좋고 모든 면에 대해서 우리가 좀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극찬했다. 김 대표는 또 “오늘 대통령 말씀이 꼭 실현되게 당에서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역사교육의 정상화가 왜 필요한지를 아주 진정성을 담아 국민들에게 잘 설명된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동안 했던 주장만 되풀이 해 답답한 하늘을 보는 느낌”이라고 성토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세번째 시정연설인데 이번에도 국민들 요구에 대한 답이 전혀 없었다”라며 “국정 교과서 강행을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살리기에 전념해달라는 게 국민들의 간절한 요구”라고 비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놨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원내대표는 “금간 술잔으로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흐르는 건 술이 아니고 민심이 흘러내렸다”며 “금이 간 술잔으로는 축배를 들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후 광화문에서 국정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시민사회와 손잡고 처음으로 대규모 장외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이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지난해 8월 세월호법 제정 촉구를 위해 거리로 나선지 1년2개월만이다.
이날 시정연설에는 보수 우익단체 회원 80여명이 국회를 찾아 직접 방청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가 이들을 초청했다는 언론보도
[박승철 기자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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