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서울의 한 선거구에서 열심히 선거운동중이던 A예비후보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침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년부터 새 선거구가 확정될 때까지는 예비후보 자격이 없으므로 선거사무소를 철거하고 간판도 떼야 하며 명함을 돌리는 홍보활동도 금지된다는 것이었다. A예비후보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예비후보들이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정치신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황당한 상황이지만 올해 안에 선거구획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원인은 작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재는 현행 3:1 인구편차인 선거구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하면서 올해 말까지만 유효성을 인정하고 이 기간 안에 인구편차를 2:1로 줄이라고 결정했다. 따라서 올해 안에 선거구를 새롭게 짜지 않으면 내년에는 모든 선거구가 위헌으로 사라지게 된다.
예비후보 등록기간이 다음달 15일부터인데 선거구 획정이 안 된 채 내년을 맞이하는 각 선거구의 예비후보들은 해당 선거구가 없어지면서 자연히 예비후보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예비후보 자격이 없는 사람이 선거운동을 할 경우 사전 선거운동으로 처벌받는 만큼 누구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되고 정치신인에게 크게 불리해진다.
상황이 이렇지만 선거구 획정 룰을 논의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실무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개점 휴업 중이다.
정개특위의 경우 지난 9월 23일 이후 40일간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특위가 이처럼 공전하는 이유는 여야간 의견차가 너무 뚜렷하기 때문이다. 여당은 300석 한도 내에서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비례대표를 한 석도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때문에 정개특위 차원에서는 합의가 불가능해 지도부가 매듭을 풀어주길 촉구하며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전쟁 중인 여야 지도부가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어차피 회의를 열어봤자 결론도 못 낼텐데 열고 욕 먹으나 안 열고 욕 먹으나 매한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선거구획정위도 마찬가지다. 획정위는 지난달 13일 국회에 획정안을 제출해야 할 시한을 지키지 못하자 대국민사과를 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획정작업에서 손을 놓은 상태다. 헌정사상 첫 독립기구로 국회를 벗어나 중앙선관위 밑에 설치된 획정위는 초반에만 해도 의욕적으로 획정작업을 주도해 나갔다. 하지만 여당 추천 위원과 야당의 입김을 받는 위원들이 남는 의석수를 호남과 영남 중 어디에 배분할까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시한내 결과도출에 실패했다.
획정위가 회의를 열지 않는 것은 정개특위가 지역구 의석수 등 필수적인 기준을 정해주지 않는 이상 회의를 열어도 똑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현역 의원들은 다른 합법적 홍보활동이 가능하지만 그 밖의 후보들은 선거운동이 아예 불가능하게 돼 정치신인 등장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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