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을 5개월 여 앞두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총재의 측근들이 곳곳에서 기지개를 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이한 점은 이 전 총재가 측근들의 총선 출마에 조언을 아끼지 않고, 강연 등 외부활동도 하는 등 지원사격에 적극 나선다는 점이다. 올해 팔순을 맞은 이 전 총재는 내년 출간을 목표로 회고록도 준비 중이다.
보수층에 일정부분 영향력을 아직도 보유 중인 이 전 총재와 주변부의 움직임이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 변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회창 사단’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내년 총선에서 서울 마포을 출마를 결심한 이채관 전 자유선진당 홍보위원장은 “이회창 정치를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 전 위원장은 이 전 총재가 1997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보좌해온 인물이다. 이 전 총재는 그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표현했고, 주위에선 ‘창의 그림자’로 불리기까지 한 최측근이다.
이 전 위원장은 최근 이 전 총재로부터 “‘내부 경선이 심화되면 서로 헐뜯기도 하는데 그러지 말라. 절대 정직하게 하라’고 조언을 들었다”며 “‘이회창 정치’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는 출마를 결심한 측근들에게 “큰 것을 얻기 위해선 작은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열심히 하다 보면 얻는 게 있다. 일단 바닥부터 열심히 다니다 보면 좋은 일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격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회창 사단’으로 불리는 ‘단암 멤버’ 중 한 명인 최형철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은 서울 송파갑에 사무실을 내고 뱃지에 도전한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이곳은 1999년 이 전 총재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곳이다.
이에 최 위원은 이 전 총재의 지역에 대한 ‘유지를 이어받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이 전 총재가 2007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홍보특보를 지내며 인연을 쌓은 지상욱 새누리당 서울 중구 당원협의회 위원장도 서울 중구 출마를 노리고 있다.
특히 최근엔 여의도 인근에서 현직 여권 요직에 있는 인사들이 ‘이회창 사단’이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열리기도 했다. 마포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이 전 총재의 팔순기념 식사자리였다.
서정우 법무법인 광장 고문변호사가 마련한 이 자리에는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윤상현 전 대통령 정무특보,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여권 관계자는 “현직 의원 중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진영 국회 안전행정위원장,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은 참석 못했지만 모두 이 때의 멤버”라고 전했다. 실제로 유 전 원내대표의 정계 진출을 이끈 장본인이 이 전 총재이기도 하다.
이런 인연으로 지난 7일 숙환으로 별세한 유 전 원내대표의 선친인 유수호 전 의원(13·14대)의 빈소를 이 전 총재는 9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빈소에서 이 전 총재는 “유수호 선배님, 하늘나라서 편히 쉬소서”라고 명복을 빈 뒤, 유 전 원내대표에게 “앞으로 소신 있게 성공하는 큰 정치인 되길 바란다”고 조언을 건넸다.
이 전 총재는 지난 9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대통령의 리더십 특강’을 하며 “자신만 정의라고 독단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실크로드 경주’ 행사에 참여하는 등 최근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이렇게 부쩍 눈에 띄는 발언을 통해 활동을 재개한 이 전 총재는 최근 손수 자료를 모아 검토하는 방식으로 회고록 집필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여전히 굵직한 정치 이슈들에 대한 과거의 논의 과정이나 현재 정치판에 활동하는 정치인들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도 담길 수 있어서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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