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의 심장이자 텃밭이 흔들리고 있다. 달라진 대구와 광주의 민심이 ‘말뚝만 꽂으면 당선’이라던 기존 상식을 흔들고 있다. 대구에서는 친박·비박 진영 간의 혈투가 예상되면서 비박 중심의 현역 의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광주에서는 ‘반 문재인 정서’의 확산이 새정치민주연합 현역의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대구와 광주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이 흔들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 대구
대구지역서는 ‘물갈이론’이 고개를 들며 친박·비박간 20대 총선 공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지역구별로 현역 비박계 현역의원에게 친박계 새 인물들이 도전하는 구도다.
대구 동구갑 지역에선 대구 경북고 동기간의 맞대결이 예상된다. 이곳은 유승민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류성걸 의원의 지역구다. 현재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다. 정 장관이 지난 8일 장관직 사의를 표하며 총선 채비에 나선 가운데 류 의원과 정면대결이 불기피한 상황이다. 1957년생으로 동갑인 류 의원과 정 장관은 경북고 57기 졸업 동기다. 유승민 의원 역시 이들과 동기 동창이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히며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유승민 의원에게는 이재만 전 대구동구청장이 도전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던 유의원이 20대 총선에서도 승리한다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선 이희국 의원이 버티고 있는 중·남구엔 이인선 전 경북경제부지사, 윤순영 대구중구청장 등이 후보군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있다. 이 의원은 대표적 유승민계 의원으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지역구를 돌아다니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뽑으면 그만’이라는 쓴소리를 해주는 시민들이 많다”며 “대구지역 시민들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민생을 챙기고 지역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은희 의원의 북구갑에는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김성훈 의원의 서구엔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거론되고 있다.
대구 지역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대구시내에서 만난 취업 준비생 김세진 씨는 “대구지역에서 새누리당=당선이라는 공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깨지고 있다”며 “유승민 의원과 박 대통령의 갈등 역시 다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택시기사 김형식 씨는 “아직까지 유승민 의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며 “대구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역 TK(대구·경북) 의원들 다수를 교체해야한다는 물갈이론은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갈등으로 불거진 후 잠시 잠잠해지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윤상현, 조원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의 발언과 정종접 행정자치부 장관의 사의 표명으로 다시 불붙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8일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의 부친상 빈소에서 “지난 총선에서 전체 과반이 넘는 대구지역 의원 60%를 물갈이했다”며 “이번에도 전략 공천으로 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9일 빈소를 찾은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2008년 18대 총선때도 대구의원 7명이 바뀌었다”며 물갈이론에 힘을 실어줬다. 같은날 저녁 빈소에 등장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물갈이론과 관련해 “(결국) 지역주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 광주
전통적인 야당 텃밭 광주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지난 4·29재보선에서 천정배 의원이 당선되면서 확인된 광주의 ‘반 새정치민주연합 정서’는 문재인 대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이 곧 당선이었던 관행도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 지역 곳곳에서 기라성 같은 원외인사들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광주 서구을은 광주 지역에서 가장 치열한 경합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천정배 의원이 ‘개혁적 국민신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송 전 시장은 천 의원을 꺾고 정치적 도약을 모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호남의 ‘반 새정치민주연합 세력’의 구심점인 천 의원을 누르면 호남 출신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송 전 시장은 20대 총선에서 천 의원을 꺾은 뒤 호남 민심을 등에 없고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맞서 천 의원도 광주를 기반으로 ‘호남 맹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야심을 갖고 있어 두 사람의 진검 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광주 동구와 북구갑이 통합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구갑을 지역구로 삼은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동구의 박주선 무소속 의원의 맞대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며 ‘범친노’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강 의원과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반 문재인 대표 진영’의 선봉에 서있는 박 의원과의 대결은 민심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두 사람 모두 3선 관록의 정치인이지만 광주지역은 ‘3선 의원’에 대한 피로감이 유독 강한 지역이어서 이를 뛰어넘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틈을 타고 정치신인 김경진 변호사가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노리고 있는 것도 변수다.
광주 남구는 각각 기획예산처 장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강운태 전 광주시장의 맞대결로 선거판이 달아오르고 있다. 장병완 의원도 당내 비주류인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으로 친노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할 경우 ‘반 문재인 정서’를 등에 업은 무소속 강운태 전 시장의 파상공세를 견뎌내야 할 전망이다. 무소속 강운태 전 시장은 막판까지 야권 신당 합류를 저울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향후 행보에 따라 선거판은 또다시 요동칠 수 있다.
광주 광산구을에서는 현역인 권은희 새정치민
[정석환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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