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1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 구성을 확정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예결위가 파행을 겪은데다 여야 의원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기 지역구 예산을 확실히 챙길 수 있는 소위에 들어가기 위해 각축전을 벌인 결과 구성이 늦어진 것이다. 법정시한인 내달 2일까지 채 3주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내년도 387조원에 달하는 예산심사 역시 ‘부실 심사’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처럼 매년 되풀이되는 부실한 예산심사에 대해 전문가들은 톱다운 예산심사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예산심사는 상임위와 예결위 투트랙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정부의 예산안을 각 상임위에서 예비심사를 한 후 사업별로 감액, 증액 여부를 결정해 이를 예결위로 보낸다. 예결위는 예산조정소위를 만들어 각 사업에 대한 감액과 증액 미세조정을 통해 예산을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렇다보니 상임위의 예비심사는 사실상 전혀 쓸모가 없다. 상임위 예산심사를 존중한다는 원칙은 무시되기 일쑤고 예결위는 여야 지도부 등 실세들의 예산 획득의 통로가 되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대통령 측근들이 잇따라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대구·경북지역의 경우 철도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예산이 5600억원 가량 증액됐다. 대구지역 도로와 건설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당초 요구한 내년 예산은 1660억 원이었으나 새누리당과 협의를 거치면서 무려 3000억원 넘게 증가한 것이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황우여 부총리의 경우 자신의 지역구가 속한 인천 송도의 관광·도로·산업 등의 분야에서 약 60여억원의 추가 예산을 챙겨갔다. 원내대표였던 이한구 의원은 당초 타당성 조사사업비 5억원만 반영된 수성의료지구를 위한 간선도로 건설사업을 예결위를 거치면서 182억원으로 증액시켰다.
최종 칼자루를 쥔 것이 예산조정소위이다 보니 의원들은 소위에 들어가기 위해 매년 사활을 건다. 하지만 정작 소위에 들어간 의원들은 전 부처의 예산을 모두 심사하다보니 어떤 사업이 중요한지, 이 예산이 과다 혹은 과소 책정됐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부실심사, 지역구 나눠먹기 심사로 이어진다.
톱다운 방식은 이런 예산 심사 방식을 뒤집은 방식이다. 예결위는 총액 중심으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교육, 국방, 복지 분야에 얼마씩을 투입할 것인지 총액만 정해서 이를 각 상임위에 내려보내는 것이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결위가 먼저 예산을 심사하고 이를 상임위에 내려보내는 톱다운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는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액 범위 내에서 중요한 사업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분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국회 국방위는 국방부 사업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방부를 감시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업에는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다. 의원들도 예산조정소위에 들어가기 위해 혈투를 벌일 필요도 사라진다.
박 전 장관은 “기재부가 매년 예산편성지침을 만들어 각 부처에 내려보내듯이 예결위는 ‘예산심의지침’을 만들어 각 상임위에 내려보내야 한다”며 “가령 국방위에 인건비를 늘리지 말고 장비 현대화에 주력하라는 지침을 줌으로써 상임위를 큰 틀에서 통제하면서도 효율적 예산 배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결위의 전문성 강화도 시급한 문제다. 현재 예결위 위원 임기는 1년으로 돼있는데 이를 최소 2년으로 늘리고 연임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예결위는 5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년씩 초선 의원들끼리 나눠먹기 식으로 돌아가며 맡다보니 전문성이 없다”며 “이는 지역구별 예산 나눠먹기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심사에서 초선 예결위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데 골몰하고 있다.
8일 예결위에서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거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상품 개발사업 11억원을 반영하고 거제 하청종합스포츠타운 조성을 위해 사업비 8억원을 증액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주 치명자(순교자) 성자 세계평화의 전당 건립사업에 10억 원 등 추가 예산 등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예결위 임기를 2년으로 늘리고 전문성 있는 다선의원을 임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미국 예산 위원회 같은 경우 의원들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심사를 해 전문성이 있다”며 “예결위만큼은 전문성 있는 다선의원들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고(pay-go) 원칙도 강화도 필요하다. 페이고 원칙은 의무지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 때에는 필요한 세입 등 재원조달 방안도 동시에 입법하도록 의무화하는 원칙이다.
현재 국회에도 페이고 원칙이 일부 반영되고 있지만 재정을 투입하는 법안을 낼 때 의무적으로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그나마도 예외 사유가 지나치게 많고 포괄적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단 지적이다.
긴급한 사유에 대해서는 심사 시 위원회 의결로 생략할 수 있는 데다 예상되는 비용이 연평균 10억원 미만이거나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엔 예외에 해당된다. 또 법안을 먼저 발
박재완 전 장관은 “무상급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지출은 일단 한 번 만들어지면 줄이거나 없애기가 힘들다”며 “지금이라도 페이고 원칙을 분명하게 설정해놔야만 이후 균형재정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제윤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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