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흘 간 뉴욕과 평양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보도가 나오고 유엔 측이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유엔과 북한이 반 총장 방북때 의제와 면담자 수준 등 세부조건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중통)이 신화통신에 반기문 총장이 다음 주 월요일(23일) 평양을 방문하며 약 4일간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통은 이 내용을 보도하지 않고 궁금증을 키웠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반 총장은 다음 주에 북한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련 보도를 곧바로 부인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반 총장이 다음주 대부분 뉴욕 유엔본부에서 근무한 뒤 영연방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몰타로 이동할 계획이며, 그 후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 곧바로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총회가 이달 30일 개최되는 점을 감안할 때 이달 내로는 평양 방문 일정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다만 유엔 대변인실은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를 위해 방북을 포함한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의지가 있다고 덧붙여 물밑 시도는 계속 진행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유엔 고위 관계자는 “한국인인 반 총장은 한반도 평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기울일 것”이라며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은 상당히 여러 변수를 감안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기 때문에 방북 일정을 조율하는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9일(현지시간)에는 유엔총회 산하 제3위원회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북 인권결의안을 표결하는 것도 반 총장 방북에는 부담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들을 종합하면 양측은 반 총장 방북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놓고 물밑에서 기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반 총장 측은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방북하는 만큼 실질적인 북측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회담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앞서 평양을 찾았던 유엔 사무총장 2명은 모두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반 총장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일단 평양에 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을 공산이 크다. 여차하면 헌법상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내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제에 대해서도 반 총장 측은 북측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과 인권개선 등에 방점을 찍고 싶을 것이다. 반면 북측은 반 총장 방북으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 비난을 물타기하고 한·미 양국의 대북 입장변화를 이끌어내려는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17일(현지시간) 리흥식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뉴욕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서 가진 회견에서 “만약 반 총장 평양 방문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상황을 개선하고 유엔과 북한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데 도움과 지원이 돼야한다”고 밝혔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