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국제사회 경고를 무시한 채 도발을 감행하고, 우리 정부와 우방국들이 강경책으로 맞서면서 한반도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겁쟁이를 가리기 위해 자동차로 마주 달리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북한·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중국의 공조를 이끌어내는 것이 사태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는 데 공감했다.
◆强대强 구도 당분간 계속
전문가들은 먼저 남북관계가 ‘강 대 강’ 대결 구도에 진입했고, 이 같은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2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정부가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더 이상 타협으로 풀어선 안 되겠다는 스탠스를 잡은 것”이라며 “일관성이 유지돼야 북한에게 의미있는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강대강 구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5월 초 노동당 7차 당대회 무렵 극한에 달할 수 있다”며 “다만 8월 광복절을 기점으로 모멘텀이 마련될 가능성은 있다”고 예상했다. 개성공단 폐쇄와 이에 따른 남북간 교류 단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상당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치킨게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정부가 남북관계를 압박 일변도로 끌고 가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안보와 교류·협력간 균형을 추구해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사싱상 끝났다”며 “정전 체제하의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났을 때 완충 지대가 없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사격이나 미사일 추가 발사 등 저강도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역설적으로 대화 제의를 하면서 국제사회의 균열을 노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양 교수도 “남쪽에 대한 무력시위와 국제사회에 대한 무력시위로 구분할 수 있다”며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 제제가 나올 경우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플라토늄·우라늄 추출 공식화 등이 있고 우리측에 대한 무력시위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NLL 침범, 비무장지대 화력 집중, 사이버 테러 등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중 협력체제 만들어야
남북간 대화 채널이 끊어진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국제공조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추가적인 대북 압박보다는 대화 재개를 위한 다각적 노력을 병행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박영자 위원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3대 3 구도를 만들어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시키려는 것이 북한 의도”라며 “일단 신냉전 구도의 형성을 막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선 중국의 태도 변화가 핵심 요소일 수 밖에 없다.
김용현 교수는 “지금 상황에선 더 이상 남북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게 중요하다”며 “한·미·중 3각 협력을 통해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과 충분한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한·미 동맹만으로 상황을 풀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박인휘 교수는 “북한은 우리가 강경하게 나갔을 때 한 번도 입장을 굽힌 적이 없기 때문에 대화를 논하기는 이른 시점”이라면서도 “다만 중국 관여든 미국 대통령선거든 어떤 형태로든 모멘텀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적극 활용할 준비를 하고, 결국 외교적인 키를 쥐고 있는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공조하면서 양자·다자 대화와 6자회담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더 이상의)강력한 압박은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개성공단 폐쇄로 우리는 카드를 거의 다 써버렸다”며 “국제적인 공조체제 구축 외에는 다른 옵션이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신헌철 기자 / 유준호 기자 / 노승환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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