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첫 발의 이후 11년 동안 국회에 잠들어있던 북한인권법이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고집’에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여야 지도부는 22일 4+4 회동(대표·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정책위의장)을 열고 합의에 도달한 북한인권법을 2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 개최를 거부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만 직권상정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23일 본회의 통과에 실패했다.
이 위원장은 23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촉각을 다투는 선거구 획정 기준안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무쟁점 법안 운운은 너무나 한가한 것”이라며 “향후 법사위 전체회의는 선거구 획정 기준안 처리가 확정된 뒤 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위원장은 여야가 합의를 이룬 법안에 대해 ‘긴급성·불가피성이 없는 법안을 하루 만에 법사위를 통과시켜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해 12월 여야 지도부가 국제의료사업지원법·관광진흥법·대리점법·모자보건법·전공의특별법 5개 법안을 올해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당시 이 위원장은 “5일간의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며 상정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정 국회의장이 ‘심사기간 지정(직권상정)’ 결단을 내리면서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지난 해 9월 민생 법안 처리 정국 당시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법안에 대해서도 “국회는 벽돌공장이 아니다. 국회의 법안심의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숭고한 과정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이 위원장 태도에 지나치게 원칙만 고수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진행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도대체 야당 법사위원장은 무슨 생각을 갖고 양당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을 이행도 안하느냐”며 “법사위에 처리해야할 시급한 민생 법안들이 많은데도 법사위를 개최하지 않으려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인권법 핵심 내용은 북한인권재단·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인권기록보존소를 어느 부서에 둘 것인가를 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이 각각 법무부, 통일부를 주장하면서 대립이 이어졌고 결국 야당의 주장대로 통일부에 두되 3개월마다 자료를 법무부에 이관하기로 접점을 찾았다.
법 조항에 ‘함께’라는 문구를 어디에 넣을 것인지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던 여야는 ‘북한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을 해야한다’는 문구로 의견 접근을 봤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국가는
반면 더민주는 ‘국가는 북한인권증진 노력을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노력과 함께 추진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돼야 한다고 맞섰다.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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