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소지를 피해 세종시에 국회 분원이라도 설치하자는 공약 역시 가뜩이나 행정 비효율의 극치라는 비판을 받는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또다른 입법 비효율을 얹는 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연합(EU) 의회의 3분할이다.
현재 EU 의회는 세나라에 쪼개져 있다. 의회 본부는 프랑스에, 사무국은 룩셈부르크가 나눠가졌고, 전문위원회는 벨기에에 자리잡았다. 프랑스와 독일 등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탓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6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3개국으로 나뉘면서 본부로의 출장횟수만 한달에 3000건이 넘는다. 1인당 한 차례 출장비용이 1000유로(평균 130만원)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회 내부 출장으로만 한달에 40억원 가까운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국회 이전이나 분원 설치 공약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직자는 “세종시 국회 이전은 위헌 소지가 있을 뿐더러 지금의 행정 비효율이 그대로 남게 된다”며 “분원을 설치해봐야 예산만 낭비하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현여부를 떠나 이번 총선에서도 충청권 표심에 혈안인 여야가 ‘담합’할 경우 국회 이전은 또다시 한국 사회를 갈라놓는 ‘주범’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세종시를 둘러싼 ‘불씨’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어 한국 사회가 치러야할 국력 소모라는 비용이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 선거때면 뜨는 세종시 공약
세종시 공약은 충청권이라는 ‘중원’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카드란 점에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채택된 이후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팻감’으로 활용돼왔다. 선거구 변화로 이번 총선 충청권 의석은 당초 25석에서 27석으로 늘었다. 호남권(28석)과 맞먹게 됐고 대구·경북(25석)보다 많아졌다. 현재 의석수로 충청권은 새누리당 14석, 더불어민주당 9석, 무소속 1석이다. 영호남으로 양분된 선거구도 속에서 충청권 의석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다. 특히 더민주당으로선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치열한 ‘백병전’으로 의석 출혈이 불가피한만큼 충청권에서 만회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선거 승패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더민주당이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이후 첫 회의를 열자마자 세종시를 찾아 ‘설익은’ 국회 이전 공약을 내놓은 것도 그때문이다.
세종시 공약은 새누리당으로서도 ‘뜨거운 감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 ‘세종시 원안’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역시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세종시로 국회 이전 공약은 공약의 장단점이나 실현가능성을 떠나 충청권에서 그야말로 표가 되는 공약”이라며 “새누리당으로서도 반대하기 쉽지 않은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당시 4개월 앞둔 17대 총선을 겨냥한 충청권 전용 공약이었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자마자 행정수도 이전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적 혼란은 국가적 혼란으로 비화됐다. 2005년 3월 국회와 사법부를 제외한 행정부처들이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국무총리를 앞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면서 여야는 물론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 유력후보인 박근혜 대통령과도 갈등을 빚은바 있다.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울궈먹을게 없어서 또 세종시 타령을 하며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 행정·입법 비효율 우려
세종시는 올해로 정부청사 이전 4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사무공간과 부대시설 등 기본 인프라스트럭처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 세종시로 이전하는 인사혁신처도 아직 청사 내 사무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국민안전처 이전으로 세종2청사 남는 공간(1만2000㎡)이 꽉차 인사처는 결국 인근 민간빌딩을 임차해 입주한다. 여기에 ‘공룡부처’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회까지 이전한다면 세종시 인프라스트럭처는 포화상태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회 분원만 내려보낼 경우에는 행정 비효율성 해소는 커녕 입법 비효율성까지 더해지는 문제도 생긴다. 이미 연간 세종시 공무원들의 서울출장비만 230억원에 달하는 상황. 국회사무처 직원들까지 KTX에 몸을 실을 경우 교통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국회의 주요 기능인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접점’ 기능이 약화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도 문제다. 민원인과 이해관계자들이 부담해야 할 교통 비용이나 정책 품질 저하 등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능률협회 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118만명에 달하는 민원인들이 세종시 공무원을 만나기 위해 지불하는 교통비용은 992억원에 달한다. 정부 정책 품질 저하 등 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매해 4조6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회 세종시 이전은 이같은 사회적 비용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행정 비효율성 감소 효과마저 없으리란 관측도 나온다. 국회가 이전하더라도 여전히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부처가 서울에 남아있어 이들이 국회 업무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비
[임성현 기자 / 전정홍 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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