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집토끼(지지층)’, ‘산토끼(상대당 지지층)’에 빗대 ‘들토끼’에 비유한다. 이들은 투표장에 아예 나오지 않으면 몰라도 투표에 참여하는 순간 승부를 뒤집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보통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지지 정당을 확정하면서 부동층이 줄어들지만 이번 선거에선 오히려 비중이 늘어나면서 결과 예측을 더 어렵게 만든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월 초 지지 정당을 묻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거나 의견을 유보한 부동층은 22%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 중 어느 당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부동층이 27%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대 총선의 국내 유권자 수는 4205만 여명, 예상 투표율(사전투표 포함)은 최고 60% 수준으로 전망된다. 단순 계산하면 투표장에는 나오겠지만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아직도 681만 여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특히 5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부동층이 고르게 늘어났고, 60대 이상 고령층 표심이 여당으로 빠르게 쏠리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60대 이상의 경우 유권자가 980만명으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많은데다 투표율도 높아(19대 총선 68.6%) 약 150만 표가 부동층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가운데 일부가 60대에 처음 들어선 뒤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20~30대에 유신과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여서 무조건 보수표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이 자체 조사한 결과 50~60대의 약 20%가 투표 의향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부터 50대 이상 투표율은 지난 총선보다 낮아지는 반면 20~30대는 소폭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처럼 ‘들토끼’가 유권자의 30%에 육박하는 것은 이번 총선의 전체 프레임과도 관련이 깊다. 먼저 이번 선거는 판세를 가를 대형 이슈가 없다. 2004년 17대 총선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이 한바탕 선거판을 휩쓸었고, 2008년 18대 총선때는 수도권에서 뉴타운 열풍이 불면서 한나라당이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부동층이 한 방향으로 쏠린 것이다. 또 지난 19대 총선은 사실상 대선 전초전 성격이어서 지지층 규합이 쉬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전선(戰線)이 흐릿하다. 새누리당은 야당 심판론,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론, 국민의당은 거대정당 심판론을 꺼내들면서 뒤죽박죽이 된 양상이다. 3당 모두 강점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당의 약점만 부각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가 된 책임이 여야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도 선뜻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선거는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4년간의 시간 누적에 따른 유권자들의 판단”이라며 “지난 4년간 정치권의 모습이 부동층을 늘어나게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막판 공천 파동도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도적 성향의 국민의당이 출현한 것도 표가 두갈래로 규합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김욱 배재대 교수는 “야당이 분열하면서 어느 정당을 지지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야권 지지자들 때문에 부동층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흐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국민의 당이 흡입하는 중도층보다 기존 여야 정당에 대한 분노로 늘어난 부동층이 많을 것”이라며 “이들이 아예 선거를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헌철 기자 / 우제윤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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