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가 5.18 기념식의 주제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거부하고, 기존의 합창 형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설명은 제창으로 바꾸면 오히려 또 다른 갈등만 유발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연 이것이 정부의 단독 결정이고, 이유일까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여야 원내지도부 회상에서 기념곡 제창을 요구하는 야당 지도부에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도록 국가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정부가 야당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만났고, 적어도 과거와는 달리 야당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보훈처는 이런 '협치'의 분위기를 깼을까요?
보수단체의 반발로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는 주장은 정국을 다시 팽팽한 긴장 상태로 되돌릴 만큼의 충분한 명분은 되지 못합니다.
또 대통령이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으면서도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특별 지시를 했는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석연치 않습니다.
어찌 보면, 보훈처가 좋은 방안을 찾기는커녕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단순한 해법을 내놓은 것이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비칠 정도입니다.
결국, 보훈처의 결정은 보훈처의 단독 결정이라고 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합창' 유지는 보훈처보다 더 높은 곳의 묵시적 승인이나 의지의 표출이었을지 모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우리 사회 좌편향된 역사관과 교육을 바로잡는 것을 국정과제로 삼았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에서 보듯이, 국정교과서 문제에서 보듯이 이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확고한 듯합니다.
이른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까스로 바로잡은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를 다시 '좌파정권' 시절로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야당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의지가 작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총선패배로 여소야대가 되자마자, 야권은 현 정부와 청와대에 강한 압박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밀리면, 야권이 남은 임기 동안 사사건건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고 방향 수정을 요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레임덕이 가속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권의 주장을 수용할 것은 수용하지만, 안 되는 것은 안된다는 강한 시그널을 야권에 보내고자 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입니다.
적어도 보훈처의 이번 결정이 사전에 새누리당과 충분한 교감 속에 나온 것 같지는 않기때문입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진석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제창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늘 비대위원들과도 재고해 달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이 이번 일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면 레임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야당은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우상호 / 더민주 원내대표
-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통화해 20대 국회에서 3당이 같이 (박승춘 보훈처장에 대한) 해임촉구결의안을 채택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트위터에 "대통령께서 지난 13일 청와대 회동에서 한 소통 협치의 합의를 잉크도 마르기 전에 찢어버리는 일"이라며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비록 새누리당이 보훈처장 해임결의안에 동참 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긴 했지만, 모양새
총선 후 예상됐던 '협치'와 '소통'은 사라지고 다시 전투적인 '대결'의 정치가 박근혜 정부 의 남은 임기를 지배할지도 모릅니다.
신임 이원종 비서실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