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출범했던 새누리당 정진석號가 보름만에 암초에 부닥쳤다. 총선 참패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당 혁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가 계파 갈등의 재점화로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쇄신을 추진하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구상이 친박계에 의해 좌절당하며, 새누리당의 미래는 미궁에 빠지게 됐다.
17일 오후 1시 20분에 열리기로 했던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는 1시간 20여분 가량 지체되다가 결국 무산이 선언됐다. 상임전국위는 친박계의 집단 보이콧으로 성원을 채우지 못했고, 이에 따라 혁신위도 이날 구성되지 못했다. 이날 참석한 김정훈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20명 정도 왔다”라며 “원내대표에게 대여섯분 더 불러오라고 했는데 (친박계 위원들이) 안 온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총선 참패의 후유증 극복을 위한 새 체제가 당내 주류인 친박계에 의해 가로막히자 비박계 의원들 강도높게 성토했다. 이날 임시 의장을 맡기로 했던 정두언 의원은 50분 정도 기다리다 퇴장하며 “정당 역사상 이렇게 명분 없이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이는 것 처음”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새누리당이 보수가 아니니까 지지층이 떠나가는 것”이라며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이 이 당의 정체성이니 국민들이 볼 때는 독재당일 수 밖에 없다”고 몰아쳤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전날 혁신위와 비대위를 비판했던 초·재선 의원 20여명이 전화를 돌려 불참을 종용했다는 얘기가 있다”라며 “비박계와 청와대 간에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당이 새 체제를 강행한 것이 이 사단이 난 이유”라고 전했다.
전국상임위 직후에 열릴 예정이던 전국위원회 역시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정원 850명의 과반에 70여명이 모자라 전국위도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전국위에선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하고 비대위 구성을 승인하려고 했다. 전국위 역시 비박계 비대위원 일색이라는 점을 들어 친박계가 집단 보이콧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진석 원내대표도 비대위원장을 못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원내대표는 주위에서 “전국위에서 비대위원장 선출을 할 수는 있다”는 조언을 들었음에도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홍문표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무산을 선언하며 “성원이 되지 않아 회의를 진행하지 못한 참담한 오늘의 현실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라며 “전국위원 여러분,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드린다.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두 회의가 모두 무산된 뒤, 김영우 의원은 “부끄러워 말을 못할 정도”라며 “우리 당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그래도 변화를 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날 혁신위와 비대위 구성 실패에 대해 “혁신과 개혁변화가 어려운데, 의원들도 당 사무처도 준비를 확실히 했어야 했다. 기간도 짧았다”라며 “오늘 참석했던 당원들은 더욱 자포자기 심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김성태 의원은 “내부 혁신위원장을 통해 우리가 자성할 수 있는 새로운 변화를 무산시킨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얘기밖에 안된다”라며 “정말 새누리당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라고 한탄했다.
이혜훈 당선자도 “정말 당이 겉잡을 수 없는 내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며 “‘새누리당이 다시한번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오늘 또 놓친 게 아닐까’하는 절망적인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당선자는 이날 전국위 무산의 가장 큰 이유가 “계파 갈등”이라며 “(친박계가)우리에게 한 석도 안 주냐고 어제 기자회견했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친박계도 향후 후폭풍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갑윤 의원은 이날 회의 무산에 대해선 “좋은 모습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의 민심을 돌리기에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김정훈 의원은 “암울하다. 암울해”라고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혁신위 구성이 무산되자 김용태 의원은 혁신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국위 무산 선언 후 곧바로 국회 정론관으로 향한 김 의원은 비박계인 김성태·김학용 의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의원은 사퇴 발표 후 “이제 새누리당 내에서 소멸해버린 정당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국민들의 뜻을 모아 싸우겠다”며 “단지 새누리당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의 사퇴를 말리던 김성태 의원은 김학용 의원과 이날 사달에 대해 논의한 뒤 기자들과 만나 “아주 침통한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어 특정계파·특정 지역은 아예 참석을 무산시킴으로서 전국위 자체를 조직적으로 보이콧한 부분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또다른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저도 이게 어디서부터 우리 새누리당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저 자신도 두려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석 원내대표측은 이날 사태에 대해 “친박(친박근혜)계의 자폭테러로 당이 공중분해됐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정 원내대표 측근은 “오늘 전국위와 상임 전국위가 열리지 못함에 따라 앞으로 당무를 논의할 기구가 없어졌고, 당을 이끌 책임있는 당직자도 없어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당 관계자는 “엄밀하게 말하면 정 원내대표는 아직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신분”이라면서 “당선인들로부터 선출돼 대표 권한대행직을 임시로 맡긴 했지만 비대위원장 추인이 불발되면서 이제는
[김명환 기자 /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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